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남한의 KBS는 모 일본방송사가 입수한 북한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님'에 대한 내용을 편집 방영하였습니다. 주체 100, 2011년에 만든 거니까 김정일 사망 전에 제작한 모양입니다.
내용은 현재 북한의 3대 세습 통치자인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에 대한 것입니다. 그를 또 하나의 위대한 어머니, 선군 조선의 어머니, 평양의 어머니로 우상화한 것이죠.
기록영화에서도 고영희가 김정일과 함께 말 타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고영희가 김정일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기 시작한 것은 김정일이 말을 타다 떨어져 위급해 졌을 때 고영희가 성심성의를 다해 살린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오랫동안 병 치료를 했고 그 때 다친 후유증으로 머리칼도 많이 빠지고 성글어 졌다고 합니다.
과히 영화를 보면 고영희의 위상이 짐작이 됩니다. 김정일이 애용한 것과 비슷한 색안경을 항상 쓰고 다니고, 손은 주머니에 계속 찔러 넣고 있고. 가끔 초상휘장도 달지 않고 다니더군요.
김정일을 동행해 현지지도를 다닌 것은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김정일이 선군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다박솔 초소에 가 여성해안포 군인들에게 화장품을 선물한 것이 별로 이상스럽다했는데 이것도 고영희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기록영화에서는 희한하게 그의 육성도 공개됩니다. 사랑보다도 '장군님의 믿음'이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했는지 칭송하는 내용, 고난의 행군시기 7년 동안 자연재해, 경제난이 겹쳐 가족들이 파괴되고 방랑아(우리는 꽃제비라고 불렀죠)들이 많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김정일이 얼마나 가슴아파했는지 자기는 쭉 지켜보았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수백만씩 굶어죽는 것도 알았고, 그럼에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얘기죠. 고영희의 생일 50돌 계기였으니까 아마도 2002년 6월경으로 추정됩니다. 지금 고영희는 유방암으로 죽고 없습니다. 2004년 프랑스에서 치료받다 사망했죠. 그러나 영화는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처리 했더군요.
김일성의 생모 강반석을 조선의 어머니로 우상화 했고,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은 혁명의 어머니, 항일의 여성영웅으로 신격화하더니, 오늘은 김정은의 생모, 김정일의 후실을 또다시 선군조선의 어머니, 평양 어머니로 미화하고 있으니 그 끝은 어딘지 정말 걱정이 됩니다.
실체를 조금만 밝히면 조선의 어머니 강반석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평양이 인민들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아편으로 낙인찍은 종교를 믿은 신자였던 거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은 김정일을 백두산 고향집에서 출산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김일성과 같이 소속되어 있던 소련군 주둔지 하바로프스크에서 낳았습니다.
평양의 어머니 고영희는 일본 오사카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 고경택은 제주 고씨 31세손으로 일제 때 일본으로 넘어가 육군이 관리하는 재봉소에서 일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천막과 군품을 납품한 군수공장에서 일했죠. 결국 김정은 어머니는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성분이 나뿐 '째포'출신(재일동포), 외조부는 남조선출신이죠.
노동당이나 보위부에서 구분하는 식으로 표현하면 친일반동의 외손자, 남조선출신의 적대계급 또는 동요계급의 배경을 가진 자, 그리고 핵심계급으로 결코 분류하지 않는 '째포'출신의 아들인 셈이죠.
이뿐이 아닙니다. 고영희의 오빠와 여동생도 사회주의 조국을 등지고 서방세계와 미국으로 망명한 '반역자'들입니다. 물론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말이죠.
참 '기막힌' 집안이죠? 이런 '한심한' 집안인데 백두산 혈통이요, 조선의 어머니, 평양의 어머니를 부르짖으니. 김정은이 당장 온 가족과 함께 자리를 내놓고 정치범 수용소에 가든지,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 성분 제도를 모두 철폐하고 이들 앞에 석고대죄하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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