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일루 가다, 절루 가다, 델루 가라요.' 이는 평안도의 어느 지역에 가서나 길을 물으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대답입니다. 다른 지방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뭔 소린가 하지만, 사실 평안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바로 길을 알아차린답니다. 물론 방향을 가리키는 약간의 바디랭귀지가 곁들어져야죠.
'이쪽으로 가다, 저쪽으로 가다, 또 다른 쪽으로 가라.' 표준어로 풀이하면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길을 찾는지 참 신기합니다. 그야말로 '척 보면 삼천리'란 말도 무색할 지경이죠.
또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일루 쭉 가다, 절루 쪽 가다, 델루 쏙 가시오.' 쭉은 큰 길로, 곧바로, 한참 가라는 뜻이고, 쪽은 좁은 길로 일정 거리 가라는 뜻, 쏙은 골목길로 들어서서 얼마가지 않으면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지방의 구수한 사투리가 사람들의 생활에 어느 정도 깊이 있게 스며들어 있으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또 사람들이 전화를 할 때마다 이런 말도 자주 듣곤 합니다. '오, 김 동무, 거 있지? 그거 오늘까지 해야 돼.' '오, 박 동무, 거 있지? 그거 다 돼서.' 여기서 거와 그거는 무슨 뜻 일가요? 단어는 같고 발음도 같지만 서로 가리키는 것들은 사람마다 천태만상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서로 알아들으며 자연스럽게 소통하죠.
남한 전라도에도 대표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거시기'입니다. 거시기는 많은 말을 대신합니다. 그리고 억양의 높낮이, 발음의 길이, 문맥에서의 위치, 내용에 따라서 다 다른 뜻으로 쓰입니다.
'거시기(누가)가, 거시기(어디)에서, 거시기(무엇을)했는데, 거시기 하니께(무슨 일이 있으니까), 거시기(어서) 가보랑께.' 거시기는 이렇게 한 문장에서 명사, 대명사, 부사, 동사를 다 넘나들며 쓰이기도 합니다.
이를 대화상대가 서로 이해하는 특정 상황으로 바꾸어 표준말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당신 아들이 역전에서 놀다가 사고를 쳤는데 어서 가보라고.' 또는 '당신 처가 산원으로 가다가 길가에서 얘를 봤다는데 어서 가보라고.'
충청도 말은 줄임의 달인입니다. 무도장에서 '저 손님, 저하고 같이 춤추시겠습니까?'를 단 두 마디로 줄일 수 있죠. '출 껴?' 또 있습니다. 표준어로 '돌아 가셨습니다,'를 경상도는 '죽었다 아임니꺼,' 전라도는 '죽어 버렸어라,' 근데 충청도는 '갔슈,'로 간결하게 표현한답니다.
지역의 방언, 사람들의 몸에 밴 언어는 어떤 방법으로도 감출 수 없다죠. 구소련의 탐정영화가 생각납니다. 독일군에 침투한 여 첩보원이 임신을 했는데 의심을 좀 받았죠.
얘기를 낳을 때 산통을 느끼면서 꼭 소리를 치는데 이때는 무조건 본인이 어릴 때 익숙한 지방 사투리가 나온답니다. 그래서 반탐 원들이 그를 잡으려고 이를 지켜보았는데 그는 끝내 사투리를 참고 견뎌내죠. 이렇게 끝까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며칠 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불행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아시아나 항공사 비행기가 착류하다 사고로 비행기 꼬리가 잘려 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대형 참사는 아니지만 비행기가 오작동 했는지, 조종사의 미숙이었는지 아직 해명해 봐야 한답니다.
최신 기술이 모두 집약된 보잉기지만 아마도 우리들의 방언이해보다 그 작동이 어딘가 좀 부족 한가 봅니다. 이 비행기도 '일루 가다, 절루 가다, 델루 가라요'를 알아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