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경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설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년세월이 흘러 7월 삼복더위가 코앞입니다. 세월은 유수라더니 김일성이 사망한지도 벌써 18년이 되었네요.
평양에서 살 때는 김일성과 같은 사람도 죽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의 후계자 김정일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한 때 '수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리지 말아야 한다!'가 김정일의 신념, 북한에 사는 모든 이들의 생활지침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김일성이 연로해지면서, 김정일이 권력을 확장하고 아버지에게 올라가는 정보를 심하게 컨트롤 할수록 이는 더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사망할 당시 김일성은 현실과 완전히 격폐된 채 살았습니다. 이는 김복신 부총리를 비롯해 북한 경제 관료들을 모아놓고 그가 마지막으로 회의를 집행했을 때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이 굶어죽고 공장들은 멈춰서고, 배급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데도 그는 '내가 늘 말하지만 철도는 인민경제의 선행관이야, 철도를 앞세우라고. 전력공업도 잘 해야 돼. 경제의 동맥이니까. 금속공업, 선탁공업도 잘 밀고나가야 돼.' 뭐 이런 얘기를 했죠.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 당시에는 거짓말도 많이 했습니다. 농장에서는 정보당 예상수확고를 부풀려서 보고했고, 공장들에서는 중앙계획화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는 듯이, 연간계획을 100%, 200%로 완성하는 듯이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경제는 파괴됐고, 나라는 병들어 갔습니다.
김정일 시대에 와서 '심려를 끼쳐드릴라'는 엘리트들의 은어와 유머가 됐습니다. 어디서 큰 사고가 나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심려를 끼쳐드리면 안 되는데,'하고 농담했고 어려운 과업이 떨어지거나 하기 싫으면 '계획을 그렇게 높이 세웠다 못하면 심려를 끼쳐드린다.'고 은근히 야지도 넣곤 했죠.
'그이께서 다녀가신 곳'과 비슷합니다. 원래 김 부자가 방문하거나 현지지도 한 사적지를 이렇게 표현하죠. 근데 부화사건으로 간부들이 해임되거나 처벌받으면 대상 연인을 보고 '아, 그이께서(해임된 간부) 다녀가셨구먼,'하고 야유하곤 했습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김씨왕조 3대째가 됐습니다. 최근 김정은은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을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화,' '발은 자기 땅에 붙이고 눈은 세계로'라는 긍정적인 발언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일부는 김정일과는 달리 적극적인 개혁, 개방을 할 것이라는 얘기도 하죠. 원래 올해 초에 하기로 했는데 남한의 이명박대통령이 개혁, 개방해야 한다고 충고했기 때문에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뜬금없는 얘기도 나옵니다.
김경희, 장성택이 극구 반대해 개혁, 개방조치가 늦어진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인민들이 현재는 김정은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큰데 개혁, 개방하지 않으면 크게 실망할 것이고, 김정은체제가 쉽게 붕괴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과거에도 사실 북한은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라진-선봉 경제무역지대도 도입했고, 신의주 개발도 추진했죠. 2002년에는 나름대로 획기적인 경제관리 개선조치도 취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이 모든 것들이 일관되게 유기적으로 결합된 개혁, 개방조치가 아닌 실험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북한판 등소평이 될지, 고르바초프가 될지는 아직도 좀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식 농업개혁과 같은 식량해결, 산업자본축적을 위한 조치, 일회성 실험이 아닌 일관적이고 전 방위적인 개혁을 추구하지 않는 한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김정은 동지께 심려를 끼쳐드릴라'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될수록 빨리 해야 할 겁니다. 유일절대체제가 다시 안착되면 김정은체제도 결국은 과거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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