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은 '정치강국,' '사상강국,' '군사강국'에 이어 '훈장강국'이기도 합니다. 물질적 자극보다는 사람들의 정신과 정치적 자극을 앞세워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가장 비유물론적인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결실입니다.
하도 훈장과 메달을 많이 달아주기 때문에 가장 흔한 '공로메달'에 인민들은 새로운 별칭을 붙였습니다. '골고루 메달!'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차례지기 때문이죠.
골고루 메달은 영향가도 별루 없습니다. 김일성훈장, 공화국영웅메달, 노력영웅칭호는 한번만 받으면 '600에 60,' 즉 일일배급 600g, 한 달에 60원(2002년 이전 기준)을 평생 보장받지만 골고루 메달은 다른 훈장들에 끼워야 대접을 받습니다.
국기훈장 2급 한 개에 골고루 메달 3개, 국기훈장 3급 한 개에 골고루 메달 5개 이렇게 말입니다.
어떤 장군들은 훈장을 너무 많아 그것을 다 달 수 가 없습니다. 왼쪽, 오른쪽에 꽉 채우고도 남으니까요. 그래서 높은 것부터 일부만 달고 나옵니다. 김일성훈장, 영웅메달, 국기훈장 1급, 전사영예훈장 1급, 노력훈장, 각종 기념훈장, 기념메달, 국기훈장 2급 등등의 순으로 말입니다.
훈장을 다는 상의 한 벌도 따로 갖추어 놓습니다. 왜냐면 양복에 훈장을 꽉 채워 달면 구멍이 많이 뚫려 옷이 다 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번 다시 달기도 귀찮고요.
아마도 훈장을 제일 많이 탄 사람들은 김일성훈장 2개, 2중 영웅, 국기훈장 1급 10개 정도 일겁니다. 2급, 3급은 수도 없이 많고요. 골고루 메달은 항상 맨 아래차지입니다. 그래도 그것이라도 많이 받으면 좋죠.
훈장, 메달보다 훨씬 값진 것도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명의 표창, 명함시계입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는 '김일성청년영예상'이 있죠. 이들 중 어느 하나만 타도 평생이 보장됩니다. '600에 60'이요.
그뿐이 아닙니다. 이력서에 이 '딱지'가 평생 따라 다니기 때문에 대학입학, 노동당입당, 승진, 직업선택, 그에 따르는 공급, 치료, 사회적 지위, 행사명단 등 모든 면에서 우선순위의 혜택을 누립니다. 심지어 죽어서도 좋은 묘 자리에 묻히죠. '항일혁명열사릉' 또는 '애국열사릉'에 말입니다.
요즘 북한에서는 내년 김일성생일 100돌, '강성대국의 원년'을 맞아 평양시 10만세대 살림집건설, 만수대지구 건설, 두단오리목장 재건, 희천발전소 건설 등 사회적 동원이 한창입니다. 끝날 때면 틀림없이 이번에도 몇 톤의 골고루 메달이 소요될 겁니다.
'흑묘백묘론,'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사상으로 이념보다 실용주의를 더 중시한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은 이런 내용의 말도 한 적이 있습니다.
'물질적 자극을 무시할 수 없다.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해를 끼친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하는 것도 물질적인 풍요와 행복을 위한 것이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과정에 구호와 이념, 훈장만 내세우면 실패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용주의와 '흑묘백묘론'의 길을 걸어 온 북한의 형제국가 중국과 '나에게서는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마라'의 '혁명적 원칙'과 골고루 메달의 정책을 편 북한의 현실은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의 부자들은 유럽과 도쿄, 서울의 거리를 누비며 명품 싹쓸이 쇼핑을 하고 있고 이미 백만장자가 백만 명을 돌파한 부의 축적, 경제성장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북한인민들에게 메달만 골고루 차례질 것이 아니라 의식주도 골고루 차례지는 날이 과연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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