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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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일, 일요일 도․시․군 인민회의 선거는 잘 치르셨는지요? 북한에서 보도한 내용을 보니까 99.97%의 투표율을 기록했더군요.

물론 저도 평양에 있을 때 투표에 참여했고 또 이 숫자에 습관 되어 있었지만 오랜만에 접하니 새삼스럽고 놀랍기만 합니다. 찬성률은 물론 100%겠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한 일입니다. 오직 북한에서만 가능한 일이죠.

이번에도 역시 계속 되풀이 되는 레토릭인 '해외에 가 있거나 먼 바다에 나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선거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했는데요, 이 사람들 때문에 100% 투표율이 안 된다는 거죠?

더욱이 놀라운 것은 북한중앙TV가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가 95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절면서 투표하는 모습을 방영한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곁가지'로 언론이나 공개석상에 되도록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 것과는 다른 행태입니다.

또 며칠 전에 있은 43차 대사회의 때는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 매제 김광섭의 얼굴도 기념사진 촬영 때 공개되었습니다. 과거에도 물론 대사회의에 참석했겠지만 이번처럼 공개하기는 처음이어서 좀 놀랐습니다. 왜냐면 이들은 북한에서 기피인물들인 곁가지이기 때문이죠.

김씨 일가 왕족가문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문의 식솔이기 때문에 북한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꽃제비'들까지도 침을 뱉고 조롱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이 곁가지에 속하는 김씨 가문 가족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천대와 멸시가 얼마나 심했으면 어딘가 나타나면 동료들이나 직장 사람들이 '바퀴벌레가 흩어지듯이' 도망쳐버렸겠습니까? 이사 갈 때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아 집식구끼리 외롭게 하군 했다 네요.

그리고 정 말 걸고 싶을 때면 외교부 부부장이든 누구든 쫒아가 '왜 저를 피하십니까? 저도 장군님의 전사입니다'라고 하소연 하군 했다죠!

북한에서는 또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김정일이 흰색벤츠를 선물했다면서요. 북한에 5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들이 어디에 가든 쉽게 눈에 띄고, 감시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곁가지'들의 운명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김평일은 1979년 구 유고슬라비아 부무관을 시작으로 웽그리아(헝가리), 핀란드, 폴란드, 지금은 체코 등지에서 36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대사벙거지를 쓰고 유배 아닌 유배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한날한시에 북한에서 쫓겨 나온 김평일의 동생 김영일은 독일에서 살다 2000년에 간암으로 사망했고, 김경진도 남편 김광섭과 함께 유럽 여기저기서 대사직함을 걸고 떠돌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명의 '곁가지'는 이들과 완전히 다른 삶을 지금 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3대 세습으로 권력을 쥐고 할아버지 흉내로 연기를 하면서 또 하나의 위대한 수령으로 살고 있죠. 김정일의 맏아들, 본가지는 김정남인데 말이죠.

이번에 김정은은 자기 집 웃어른들을 모두 내세워 어색한 수령놀이의 들러리로 써먹고 싶었나 봅니다.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