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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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8월 3일은 1984년부터 시작된 '8월 3일 인민소비품'생산운동 발단 30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입니다. 이날을 맞으며 평양시 3대혁명전시관에서는 전국적인 전시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제품 1천 500여 종에 12만 4천여 점이 전시됐다고 하는군요.

또한 이날을 기념해 인민문화궁전에서는 김기남 노동당 비서, 안정수 당 경공업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8•3 생필품 생산운동 발단 30주년 중앙보고회'도 열렸습니다.

보고회에서 로두철 내각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은 '인민생활 향상 대 진군이 힘있게 벌어지는 오늘, 8월3일 인민소비품 생산운동을 전군중적으로, 전사회적인 사업으로 더욱 발전시켜나가려는 것은 당의 확고부동한 의지'라고 했습니다.

8.3제품 운동은 김정일이 84년 8월 3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 경공업제품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생산 부산물과 폐기물을 활용해 생활필수품을 많이 만들라고 지시해 생긴 것입니다. 즉, 공장의 기본 생산 공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이용해 만든 재활용품입니다.

당시 평양시당과 평천구역 당 책임비서를 지낸 김히택이 이 사업에서 큰 공을 세워 평가를 많이 받았죠. 그래서 이후 김경희 밑에서 당 경제정책검열부 제1부부장, 경공업부 1부부장으로 활동했습니다. 8.3소비품 생산의 선봉에 섰던 평천구역은 현재 직매점을 통해 수천가지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상품도 부엌세간으로부터 옷가지는 물론 학용품과 화장품, 전기일용품, 신발류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8.3제품생산은 사실 북한계획경제가 보장하지 못하는 상품부족을 대체하고 보충하는데도 기여했지만, 북한에 자본주의적 부업활동, 시장가격, 시장경제원리를 원시적 형태로 도입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가계획 밖의 상품, 유통경로, 국정가격이 아닌 시장가격이 도입되었으니까요.

물론 초기 제품의 질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8.3은 부산물, 짝퉁의 대명사로 쓰이게 됐죠. 사람들을 욕하거나 조롱할 때도 8.3을 붙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김정은에게 '8.3 수령'이라는 딱지는 붙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또한 사람들의 직장생활, 사회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요즘은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직장에 돈을 내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면서요. 이들이 내는 돈을 '8.3 돈', 이들을 '8.3 노동자'라고 부른답니다.

경제난이 심각했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이런 현상이 급속히 확산됐죠. 사실 근로자라면 직장에서 월급을 받아야 할 텐데 거꾸로 직장에 돈을 바치고 부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니, 국가가 비사회주의를 조장하고 장려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또 요즘은 불륜관계를 의미하는 '8.3부부'가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다면서요. 기본생산 공정 외에 만드는 8.3제품을 비유해 본처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풍자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심각한 것은 이들 상당수가 마약, 포르노물, 집단 성행위까지 탐닉하고 잇다네요.

이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이어 남녀관계도 '사회주의기발'을 내려야 할 것 같네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