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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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존경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반세기가 넘게 서로 갈라져 살고 있는 남과 북의 차이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와 소득 수준, 노래와 문화, 심지어 키와 수명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언어도 예외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남한에는 영어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낙지'를 여기서는 '오징어'로 통합니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많이 먹는 '삼계탕'을 북쪽에서는 '닭곰'이라고 하죠.

제가 외국에서 남한드라마를 몰래 '훔쳐' 볼 때 남한발음에 익숙하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남한에 와 '조선일보' 신문을 다 읽는데 한나절 이상이 걸렸습니다. 문화와 언어의 차이가 그렇게 심하다는 얘기죠.

꼭 같은 말인데도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단어도 있습니다. '달리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달리는 운동을 뜻하는 외에 남한에서는 술을 2차, 3차, 4차 옮겨 다니면서 밤새 마시는 것을 '달린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쓰이는 뜻은 완전히 다릅니다. '고난의 행군'시절 경제가 최악이고, 사람들이 많이 굶어죽을 때 새롭게 생긴 은어인데요, 외화벌이장사를 하다 돈을 갖고 튀어 쫒기고 피하면서 끝까지 돈을 지키고 장사판에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남의 물자, 외국대방의 돈을 '꿀꺽' 하고 입을 씻은 다음 '달리기'를 하죠.

요즘 북한에서는 외화벌이를 위해 거머리 잡이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관절염, 허리병 치료에 쓰여 수요가 높다고 하는군요. 값도 괜찮고요.

함경북도 경원군에서는 농장원들뿐 아니라 탄광 광부들까지 떨쳐 나와 논에서 거머리를 잡고 잇다네요. '사실 별짓을 다한다는 생각도 하지만 하루 고생하면 며칠 식량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달라붙는다'고 합니다.

어떤 주민들은 '당이 아니라 거마리가 우릴 먹여 살린다. 당이 거머리만도 못하나'라고도 말한다는데 수용소에 잡혀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거머리 외에도 부채마와 세신(약초 종류), 황기를 중국에 팔기 위해 산기슭을 다 파헤쳐 비만 오면 토사가 흘러내리고, 족제비나 토끼 가죽을 팔기 위해 동물사냥에 저마다 나서 족제비 씨가 말라 농장에는 쥐가 바글바글 하다네요.

저는 그 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제가 있을 때도 외화벌이를 위해 사람들이 별짓을 다했으니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실뱀장어(뱀장어 새끼) 잡이입니다. 새벽부터 강에 나가 간데라불(카바이드 가스를 이용한 불)을 쳐들고 몇 시간씩 헤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실뱀장어를 잡느라 수많은 사람들이 곤 역을 치렀습니다.

가격이 정말 좋았기 때문에 고생을 무릅쓰고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이 일을 했죠. 그 때 소문에 의하면 이 실뱀장어는 배에 실려 일본에 가는 동안 속성 사육되어 도착하면 바로 식당에서 판매된다고 했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다음은 송이버섯, 고사리 채취입니다. 이제는 씨가 마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송이를 잘 캐는 분들은 하도 귀신같이 송이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비온 뒤 산에 올라가면 송이 크는 소리도 들린다나요.

한때는 볏짚을 파느라 난리가 났습니다. 온전한 볏짚이란 볏짚은 몽땅 모아 넘겼죠.

한쪽에서는 돈이 좀 되는 것은 초토화해 팔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을 사기 쳐 '달리기'를 하고, 외국에 나가있는 사람들은 콩나물장사, 담배, 자동차밀수에 이어 마약에 손을 대고, 이것이 오늘 '강성대국'을 건설해 나가는 우리 고향, 북한의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