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時’는 ‘주체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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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며칠 있으면 조국광복 70주년입니다. 우리 조국이 일제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남북은 38선 철책에 잘려 광복 70주년의 기쁨과 함께 분단 70년의 아픔도 같이 맞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북한의 표준시 변경에 의해서 우리가 함께 분단의 고통을 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더 실감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북한이 일제식민지 청산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말이죠.

조선중앙통신은 '간악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삼천리강토를 무참히 짓밟고 전대미문의 조선민족 말살정책을 일삼으면서 우리나라의 표준시간까지 빼앗는 천추에 용서 못할 범죄행위를 감행했다'고 했죠.

그러면서 '피로 얼룩진 일제의 백년죄악을 결산하고, 민족의 자주권을 굳건히 수호하며, 백두산대국의 존엄과 위용을 영원토록 세계만방에 떨쳐나가려는 것은 조선 군대와 인민의 신념이며 의지'라며 광복 70주년을 맞는 15일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동경시보다 표준시를 30분 늦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평양時'로 명명했죠.

남북은 모두 일제 강점기 이후부터 우리 한반도 중앙부를 지나는 동경 127.5도가 아닌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동경시를 표준으로 써왔습니다.

그동안 남한에서도 일본 기준에 맞춰진 표준 자오선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었죠. 1954년에는 동경 127.5도로 복귀시켰으나 1961년 8월부터는 다시 동경 135도로 바꾸었습니다. 이후에도 127.5도로 하지 못한 것은 사회경제적 비용과 주한미군의 군사작전 등이 큰 이유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일방적인 표준시 변화로 일단 그 배경과는 무관하게 한반도 남북은 시간의 분단이라는 아픔을 더 겪게 됐습니다. 개성공단 출입 등 남북교류에서 당장 시간이 차이나 조율이 필요하고 앞으로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더 많은 혼란이 예상됩니다. 특히 안전상 아주 예민한 항공관제 등에서도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겠죠.

표준시와 관련된 문제는 다른 지역에도 없지 않습니다. 중국은 영토의 동서 폭이 5,200㎞에 이르지만 미국•러시아와는 달리 표준시를 쪼개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베이징時를 쓰고 있는 거죠. 1949년 건국 때 '천하 통일'을 내세우면서 '시차를 두면 분열의 빌미가 된다'는 정치 논리 때문이라네요.

그래서 서쪽 끝 티베트에선 표준시와 실생활이 세 시간 가까이 차이 납니다. 그래서 여기선 이웃 네팔 시각에 맞춰 산다네요.

결국 에베레스트 북쪽 티베트에 간 산악인들은 세 가지 시간대에서 삽니다. 베이징을 기준으로 한 표준시, 그리니치 표준시로 받는 기상정보, 1956년 '인도의 속국이 아니다'라며 표준시를 앞당겨 45분 단위 시차가 나게 한 네팔시간.

이번 북한의 표준시 변경은 남북이 합의하고 그 시기를 조율해 공동으로 해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또 한 가지 씁쓸한 것은 '우리 민족끼리'를 그렇게 외치는 북한의 속내가 결국은 '주체형의 우리민족끼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것입니다. 제대로 된 '평양時'는 '주체時'가 되면 안 되겠죠?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