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고르바스트로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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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존경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고르바스트로이카'라고 하면 우리에게도 귀에 익은 말입니다.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이었으며 동유럽 개혁, 개방의 선구자였던 고르바초프의 '고르바'와 그의 개혁을 상징하는 단어 '뻬레스트로이카'의 합성단어입니다.

그는 '재편'을 의미하는 '뻬레스트로이카'와 '공개'를 의미하는 '글라스노스트'를 핵심으로 신사고를 역설하면서, "모스크바의 하늘에도 신은 존재 한다"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고 정치, 경제차원에서의 혁신에 이어 신과 인간, 종교와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정책적 전환도 이끌었습니다.

결과 소련의 종교는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독'에서 인간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정신적 평안과 안녕을 추구하는 종교본연의 의미를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미국에서는 그가 출마하면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소련의 변화에 뜻밖의 사건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평양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던 72시간의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였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1년 8월 18일부터 21일 사이에 일어난 사변입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반기를 든 국가보안위원회(KGB) '까게 베'와 국방, 내무부의 장군들은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구성하고 흑해 크림반도의 별장에서 휴가 중이던 고르바초프를 찾아가 사임을 요구하며, 거절하자 그를 별장에 감금합니다.

탱크부대를 모스크바에 진입시키는 동시에 고르바초프로부터 핵, 미사일 발사장치까지 빼앗았습니다. 이를 저지한 사람은 다름 아닌 당시 러시아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이었습니다. 그는 쿠데타에 대항하자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을 발표합니다.

모스크바 러시아공화국 의사당 앞에서 탱크 포탑위에 올라타 "쿠데타 세력에 당당히 맞서자"고 연설하는 역사적 사진도 이때 찍은 것입니다.

쿠데타군이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천 명의 옐친 지지자들이 의사당 주변으로 몰려들어 바리케이드를 설치했습니다. 청년 3명이 쿠데타군의 총에 맞아 숨지자 더 많은 시민이 모여 들었죠.

국제적 비난도 거세져 군은 갈팡질팡하며, 결국 탱크를 철수시키고 쿠데타 주모자 대부분은 곧바로 체포됩니다. 옐친은 공산당 활동을 금지시키며 고르바초프가 그해 말 사임한 후 신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을 이끄는 최고 권력자가 됩니다.

오랜 공산통치의 무능과 비효율로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에서 재출발한 러시아는 20년이 지난 지금 강대국으로 다시 자리 잡고 있습니다. 88년 세계최대산유국 지위에서 소련붕괴 후 8위까지 추락했다 현재는 석유생산량 1위, 천연가스 생산, 매장량 1위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에너지, 광물을 앞세운 자원외교로 영향력을 계속 확대하고 있고, 명목 GDP는 1조 4,650억 달러로 세계 1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 스페인(1조 4,099억 달러), 오스트랄리아 (호주, 1조 2,355억 달러), 메히코(1조 392억 달러), 남한(1조 70억 달러)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이 성장의 중심에는 '까게 베'출신으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2기의 대통령을 지낸 블라디미르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그는 '안정'과 '대국 재건'을 기치로 강국 러시아 복원 정책을 밀어붙였죠.

내년 3월 러시아는 대통령선거를 또 치릅니다. 현 대통령 메드베데프는 청년들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고, 푸틴은 중, 장년층이 지지한다고 합니다. 지지율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고르바초프는 "푸틴이 이끄는 통일러시아당은 소련공산당을 연상시킨다. 푸틴은 러시아의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으려 한다"며 거세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북한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구소련의 미래가 앞으로 20년 정도 이 선거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니 결과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