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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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례 없는 장마와 폭염으로 힘든 날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마철 급성 질병이 확산돼 큰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병을 극복하기 위해 약을 얻든, 식량을 확보하든, 인민반이나 직장에서 요구하는 석유, 도시락, 시멘트, 철, 동, 심지어 인분까지 마련할 때 주민들은 흔히 이를 '구하다'라고 표현합니다.

보통 관혼상제를 준비할 때 많이 쓰죠. 결혼식 할 때는 상에 놓을 닭, 과일, 당과류도 구해야 하고, 술도 구해야 합니다. 좋은 담배 몇 갑도 구해야 하고, 상에 놓을 술은 진짜는 아니래도 술을 채울 좋은 술병은 틀림없이 구해야 하죠.

지금은 확산되는 장마철 질병 때문에 많은 약들도 자체로 구해야 할 겁니다.

사실 북한에는 노동당이 개발한 '정성운동'이 있습니다. 김일성은 1961년 7월 '전국 보건부문 열성자 대회'에서 같은 해 2월 흥남비료공장 병원과 함흥 의과대학 실습생들이 화상을 입은 한 소년의 생명을 구한 사례를 치하하면서 이를 '정성운동'으로 발전시킬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북한에서는 환자치료는 물론 보건정책, 병원운영에서 '정성운동'이 기준이 되었고, 이는 전 사회적인 대중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의사담당구역제가 있죠. 훗날 호담당제로 발전하였는데 각 인민병원과 진료소엔 호담당과도 생겼습니다. 환자들이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직접 찾아가 자기가 맡은 지역의 치료를 책임지고,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적 시책입니다.

무상치료제, 예방의학 중심, 동서의학의 결합도 북한의 보건, 의료제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시책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배급제가 거의 붕괴되고, 보건의료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지금은 '정성운동,' '의사담당구역제'가 거의나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주민들은 이에 대항해 자체로 진단하고, 자체로 구하고, 자체로 치료하는 길을 택했죠. 모두가 반 의사가 됐습니다.

실례로 지금처럼 장마철에 많이 생기는 설사, 콜레라, 식중독 등 급성 병에도 자체로 대응합니다. 아편이 설사에 즉효라고 하죠. 그래서 집집마다 아편을 달여서 만든 약을 대체로 보관하고 쓰고 있습니다. 약이 없는 사람들은 몇 끼 또는 며칠 굶는 방법으로도 해결합니다.

링거 병은 맥주병을 소독해 해결하고, 주사는 일회용 플라스틱 주사기를 물로 끓여 며칠이고 씁니다. 자체로 주사를 놓는 것은 물론이고 때론 알레르기 검사 없이 기한이 지난 페니실린, 마이신도 맞습니다.

간염에 걸리면 쑥을 구해 인진 고를 달여 먹고, 호박에 가물치를 넣거나 민물고기로 이뇨, 황달, 복수에 대응합니다. 노루가죽도 달여 먹죠.

고혈압, 뇌 혈전, 뇌출혈에 대비해서는 사향을 조금씩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합니다. 물론 이를 구할 수 있는 고위급 관료들이 많이 이렇게 하죠. 뇌출혈이나 뇌 혈전이 오면 바로 사향을 써 초기 대응해 사망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요즘 전 스위스주재 북한대사 이수용은 마식령 스키장에 놓을 스키시설을 사느라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고 합니다. 사실 자본가들은 상품을 팔지 못해서 야단인데, 북한은 핵, 미사일 때문에 제재를 받아 이를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처지라네요.

북한인민들의 구하기 정신으로 북한통치자들도 이제는 모든 것을 구해야 할 판이 된 것 같습니다.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