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야기] 새까만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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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아니 글쎄, 새까만 차가 우리들 쪽으로 스르르 다가오더니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차에서 내리시게 아니겠습니까!'

'남루한 옷차림에 새벽잠을 덜 깬 우리들의 젖은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면서 그이께선 아침밥은 먹었는가, 평당 수확고는 얼마인가, 요즘 한랭전선의 영향으로 냉상모 키우기가 어렵다는데 날씨는 변덕스럽지 않은가, 자식들은 몇이며 애들 학교는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가 등 가정문제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물어주시었습니다.'

북한에서 명절 경축행사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김일성 위대성 찬양 내용입니다. 이때 꼭 등장하는 것이 새까만 승용차입니다.

새까만 승용차에 깃든 사연은 김씨 가문의 2대째로 이어집니다.

1976년 7월 어느 날. 덕성군의 한 협동농장 책임 기사는 화물차를 외통길에 세우고 석탄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길이 좁아 차 한 대만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지만 점심시간이라 차가 없어 재빨리 일을 해치울 심산이었습니다.

이때 새까만 승용차 한 대가 길에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외통길인지 몰랐는지 차는 화물차 코앞까지 다가와 멈춰 섰습니다. 차안의 젊은 간부는 문건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고, 운전사만 내려 중요한 일이 있어 가는 길이니 피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책임기사는 흔쾌히 화물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때 새까만 승용차에 앉아있던 젊은 간부가 내려 무슨 일인지 물어보더니 아무리 바쁘다고 화물차에 길을 비키라면 안 된다, 길을 비켜야 한다면 작은 차가 비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승용차를 후진하려면 밭과 낭떠리지(벼랑) 사이의 좁은 길로 가야 하기에 위험했죠. 책임 기사는 승용차를 후진하는 것은 위험하니 자기가 후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간부는 저렇게 큰 차가 짐을 가득 싣고 좁을 길에서 후진해서는 안 된다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젊은 간부는 갑자기 길옆에 다가가 낭떠러지를 살펴보더니 길이 험한데 후진하지 말고 여기에 길을 재빨리 내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했습니다.

주위에 큰 돌이 많으니 길옆 바위 사이에 돌을 채우면 그 위로 차가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을 나르기 시작했죠.

뙤약볕 아래서 한참 시간이 흘러 드디어 차 한 대가 지날 수 있는 길이 완성되었습니다. 젊은 간부는 승용차 운전사에게 차를 몰아보라고 하고는 차 앞에서 바퀴를 살피며 방향을 잡아주었습니다.

승용차가 화물차 옆을 지나가자 젊은 간부는 책임 기사의 손을 잡으며 시간이 없어 이야기도 나주지 못하고 가니 널리 양해해달라며 차에 올라탔습니다.

책임 기사는 승용차 운전사와 인사를 나누며 귓속말로 저분은 어디 있는 간부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운전사는 빙긋 웃으며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라고 말해주고 떠나갔습니다.

책임기사는 방금까지 자신과 땀 흘려 돌을 나른 분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니 너무 놀라 멍하니 서서 떠나가는 새까만 승용차를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연 역시 장군님의 고매한 덕성, 겸손한 품성, 인민성을 노래하는 혁명일화입니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서 새까만 차는 무조건 간부차를 상징합니다.

얼마 전 김정은은 27마력짜리 작은 목선을 타고 연평도 코앞에 있는 무도와 장재도 방어 대를 방문하였습니다. 이 역시 3대에 이은 김씨 가문의 한없이 고매한 덕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제스처인 것 같습니다.

최근 김정은이 구입하려하는 천만 달러짜리 영국제 요트는 별장에서만 쓰겠죠? 강원도에 개인전용 스키장까지 건설한다고 하던데.

이러다가 인민들 앞에서의 쇼를 위해 새까만 차들을 모두 소달구지로 바꾸지 않을까요?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