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에는 축구얘기를 하면서 호랑이얘기도 잠간 했죠. 오늘은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물, 호랑이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얘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호랑이가 오죽 우리민족에게 친숙했으면 한국을 소개하는 '한국문화의 뿌리'라는 책을 저술한 외국인 코벨박사가 담배를 피우는 호랑이 사진을 책의 표지로 선정했겠습니까.
호랑이는 우리에게 포악한 맹수로도 되고, 수호신도 되며, 의롭고 친근한 친구도 되고, 또 어수룩한 존재도 됩니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도 호랑이가 등장하죠. 단군신화를 보면 곰과 호랑이가 모두 인간이 되길 원하지만,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며 인내하는 과정에 호랑이는 이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결국 맹수로 남습니다.
호랑이의 다양한 이미지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속담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 위험을 무릅쓰고 손해를 감수해야 그만큼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어에는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주식투자를 빗대 많이 씁니다. 위험한 투자일수록 수익도 높다는 얘기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우리가 일상 시에 가장 많이 쓰는 말입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항상 침착하게, 여유 있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속담과 뜻이 비슷하죠.
이외에도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있습니다.
항간에 잘 알려진 속담 외에도 일반인들이 창조해 흔히 쓰는 말도 있죠. '자는 호랑이 코털 건드리기.' 괜한 걱정거리를 만든다거나, 엄청난 위험을 자처했다는 의미입니다.
'종이호랑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인제는 힘이 다 빠져 더는 위험하지 않은 존재라고 야유해 부르는 말이죠. 서슬 푸른 간부가 인제는 힘이 다 빠져 하치않은 존재가 되었을 때, 북한에서 미국을 비꼴 때도 이 말을 자주 씁니다.
'재밌는 곳에 범이 난다'도 교훈적인 표현입니다. 나쁜 장난을 반복적으로 하고, 또 누구도 모를 것 같지만 결국 반복하다보면 들키게 되고,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재밌고 평화로울수록 항상 그 반대의 경우, 위험도 대비하고 각성해야 한다는 뜻이죠.
북한에서 호랑이는 예술작품에서 부정적 대상으로 의인화해 쓰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아동영화 '호랑이와 고슴도치'가 있는데요, 여기서 호랑이는 힘이 세고, 덩치도 크고, 맹수이지만 결국 고슴도치의 지혜와 작지만 강한 무기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모든 예술작품에 긍정과 부정의 대립, 사상성을 가미하는 북한식 기준으로 여기서 호랑이는 미국, 고슴도치는 북한입니다. 실제 강연이나 사상학습에서도 고슴도치전략을 많이 언급하고 쓰죠.
이와 유사한 유명한 동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나비와 수탉'이죠. 수탉은 우쭐거리면서 동산의 왕, 주인노릇을 합니다. 동산을 짓뭉개기도 하고, 나비를 비롯한 약한 동물들을 못살게 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비의 지혜와 노력으로 결국 수탉은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비는 지혜와 꾀로 수탉을 물리칩니다. 여기서 역시 수탉은 미국이고, 나비는 북한입니다.
어제 북한은 정권창건 65주년을 기념해 노동적위군 열병식을 다시 열었습니다. 요즘 한, 두 달 건너 한번 씩 열병식을 하더라고요. 혹시 너무 재밌는 곳에 범이 나오지나 않을까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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