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남한에서는 '작은 결혼식 캠페인'이 한창입니다. 조선일보와 여성가족부가 앞장서고 있는데요. 경쟁적인 호화 결혼비용을 줄이고, 가족들 사이 불화와 신혼부부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데 목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없던 결혼, 혼수문화가 퍼져 큰 사회적 문제로 되고 있는데요. 호텔이나 비싼 예식장에서의 결혼은 보통이고 남자는 집, 여자는 호화 혼수를 준비하느라 많은 사람들이 뽕이 빠질 지경입니다.
게다가 이것이 불만, 불행의 화근이 되어 신혼들이 결혼하자마자 헤어지거나, 사돈집들끼리 불화를 겪기도 합니다.
"이 집 마련하는데 네가 보탠 게 뭐 있어? 내 집이니까 네가 나가! 몸 만 나가!" 이는 서울의 어느 한 이혼 전문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신부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신랑에게서 들었다는 폭언이라고 합니다.
혹시 아들, 딸 여럿을 가진 북한가정이었다면 남존여비사상을 비판한 북한개그에서 나오듯이 '서서 싸는 애들은 놔두고, 앉아 싸는 애들이 네가 다 데리고 나가!'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집은 남자가 해온다'는 통념에 밀려 무리해서 신혼집을 산 신랑이 '아내가 해온 혼수와 예단이 성에 안 찬다'는 이유로 폭발한 사례라고 하는데요. 이 소송의 내막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갈등의 뿌리에는 '집은 원래 남가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관행과 인식, 그리고 여자는 답례로 그 집값의 10-20%선에서 현금과 각종 명품을 시댁에 보내는 혼수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나니 아들가진 부모들은 사돈, 며느리 눈치 보느라, 또는 아들이 기 죽을 가봐 울며 겨자 먹기로 집값을 대주느라 등골이 휘고, 신부 쪽은 남들에 뒤지지 않게 혼수를 마련하느라 고통스러운 거죠.
북한의 결혼, 혼수문화는 이와 비교하면 좀 양호한가요? 거의 비슷하다고 봐야겠죠. 왜냐면 자유롭게 집을 팔고 사지는 않지만 남자들이 보통 집을 마련하는 것으로 돼있고. 대신 여성들은 5장 6기를 비롯해 살림살이 준비를 모두 해 와야 합니다.
이불장, 옷장, 찬장, 장식장, 신발장이 5장이죠. 장식장대신 책장을 먼저 마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6기는 텔레비전수상기, 냉동기, 재봉기, 세탁기, 선풍기, 녹음기입니다. 이 중에서 전기와 물이 바르니 세탁기는 있으나 마나고, 녹음기도 최근에는 별루일겁니다. 대신 비디오기기나 CD플레이어를 훨씬 선호하죠.
여자들이 준비할 것은 또 있습니다. 당연히 이불이죠. 이불 몇 채를 해 오느냐, 목화솜이냐, 오리털이냐, 나일론 솜이냐 등도 가립니다. 신랑 손목에 세이코시계도 하나 채워줘야 제격이죠.
반지문화는 없지만 멋진 라이터나 넥타이를 선물하는 신부들도 있습니다. 이 외에 시형에게는 타이츠(티셔츠), 시부모들에게는 양복이나 일본산 모 내의를 선물한다, 시누이들에게는 조선옷감을 마련한다, 난리입니다.
좀 능력이 되면 삼촌과 4촌들에게도 양말이나 양복지 같은 것을 선물하죠.
관혼상제로 인한 낭비를 막기 위해 북한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를 경고하고 당에서 조직적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북한예술영화 '잔치 날'에서도 나오듯이 혼 객들이 헷갈려 남의 결혼식을 방문한다거나, 바쁜 친척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거짓 사망전보를 치는 현상들을 막기 위해서죠. 결혼식을 요란하게 해 잘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대사인데, 친구들, 남들은 다들 이렇게 한다는데,'라는 생각으로 너도 나도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남북의 결혼문화! 이는 서로를 의식하고 눈치 보는 우리식의 체면문화, 조선시대에도 없던 과시의식이 낳은 결과가 아닐까요?
외국에서는 부자들도 소수의 친지들만 초청해 자기 집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치른다고 합니다. 미국 페이스 북 창업자 저커버그는 청첩장도 안 돌리고 음식은 동네식당에서 주문해 간소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당시 그의 재산은 200억 달러가 넘는데도 말이죠.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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