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하고 반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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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외신에 따르면 지난 5월에 붕괴됐던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동 아파트가 다시 일떠서 주민들이 입주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본래 모습대로 초강도 세기로 다시 지으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군인들이 동원돼 4개월 만에 무너진 아파트와 똑같은 크기의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하죠.

이번에는 틀림없이 견고하게 지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입주한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죠. '시정하고 반복하겠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농담으로 많이 했던 말입니다. 뭘 잘못했다고 비판받으면 그것을 접수는 하지만 앞으로 또 반복하겠다는 말이죠.

서로 웃기려고 하는 유머이지만 그 내용 속에는 북한이 주구장창 매주동안 반복하는 생활총화, 호상비판에 대한 비판도 깔려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조직원들 위에서 성원들을 비판만하고 질책하는 위치에 있는 당 비서들에 대한 조롱도 담겨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을 가지고 항상 서로 꼬투리를 잡으면서 비판을 해야 하는 조직생활에 대한 반항심도 섞여 있습니다.

'시정하고 반복하겠습니다.' 이 말은 이번 평천구역 아파트 붕괴사고와 같은 것과는 정말로 별개의 말이 돼야겠죠. 그러나 평양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시민들, 주민들이 감수해야 할 고통이 시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죠.

이번 23층 아파트 붕괴사고도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당국이 강요하는 '속도전,' '조선 속도'의 결과입니다. 이에 정신 차리지 못하고 또 4개월 만에 23층짜리 아파트를 얼렁뚱땅 지었다니 참 걱정이 됩니다.

1990년대에 통일거리를 건설할 때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죠. 당시 사회안전성 소속 7총국이 짓던 고층 아파트가 풀썩 주저 않았는데 원인은 겨울철에 제대로 말리지도 않고 블로크를 쌓아 이런 끔직한 사고를 초래했습니다.

각 건설여단, 중앙기관들마다 돼지 몇 마리씩 걸어놓고 무리하게 진행한 '사회주의 경쟁', '속도전'경쟁이 낳은 대 참사였습니다.

평양의 부실공사는 전후복구건설시기 북한이 창조한 '평양속도'에서부터 유래했다고 봐야죠.

그때 건설한 평양시 한복판의 외무성 청사는 빌딩사이 틈이 많이 벌어져 큰 위험을 안고 정무원들이 그 속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파거리에 있는 아파트 한 채도 위험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청년동맹 평양시청사 바로 뒤에 있는 꽤 큰 집인데 밖에서 올려다보면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북한에서 시정이 되지 않고 반복되는 사고들은 아파트 붕괴만이 아닙니다.

열차전복사고를 보면 끔찍합니다. 1990년대 초에 있은 원산행 열차 전복사고, 그리고 백암령을 포함해 북부지역에서는 정기적으로 여객열차 전복사고가 반복돼 수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사고들, 현상들이 반드시 꼭 시정되고 고쳐지려면 현재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주의적 운영방식에서 각자가 책임지고 돌보는 개인주의적 시장경제 방식이 도입돼야 아마도 북한이 그토록 주장하는 '주인다운 입장'의 정의가 실현돼지 않을까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