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노동신문에는 어느 날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돈 저울에 오른 인간생명, 병마에 시달리고 죽어가는 남조선 주민들.'
내용은 이렇습니다. '인간생명이 돈 저울에 올라 희롱당하는 남조선사회에서는 이러한 가슴 아픈 일들이 예사로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한 실례를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봉북리의 30살 난 권용섭주민의 경우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8살 때 무릎에 난 종처의 통증으로 병원에 찾아갔다.
그러나 환자의 병보다도 돈을 먼저 따지는 병원모리배들은 그가 일찍 부모를 잃은 고아 라 하여 하치않은 수술마저도 거절하였다. 소년은 형에게 부축되어 여러 곳의 병원을 찾아갔으나 냉대와 멸시만이 들씌워질 뿐이다.
어느덧 병은 골수염으로 넘어갔으며 모리배들은 수술비만도 800여만 원을 내라고 하면서 외면하였다. 하여 그는 청장년이 된 지금까지 20여 년간을 어둠침침한 골방에 엎드려 모진 아픔과 눈물 속에 살아왔으며 영영 일어나지 못할 기막힌 운명에 놓여있다.
…하여 오늘 남조선에는 결핵과 간염, 위염, 신장염, 심장병, 고혈압 등으로 당장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될 환자들만도 1,000여만 명이나 되며 이 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또한 해마다 수십만을 헤아리고 있다.'
북한이 자기 의료시스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남한을 비난하기 위해 쓴 대표적 기사입니다. 교과서, 언론기사, 책 등 어디서도 이런 내용은 쉬이 찾아볼 수 있죠. '무병장수,' '정성운동,'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 '어린이보육교양제도,' '정휴양제도'도 북한의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를 자랑하는 표어들입니다.
그런데 실제 인민들 속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말은 '우리는 모두 반 의사'입니다. 주민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반 의사정도의 의료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죠.
그도 그럴 것이 국가의료시스템이 마비되면서 북한사람들은 정말 모두 반 의사가 됐습니다. 페니실린 주사도 남을 놔주는 것은 보통이고 자기 엉덩이에도 척척 주사를 놓습니다.
아편의 줄기나 잎사귀, 때론 여기서 추출한 원액을 이용해 설사를 치료합니다. 아무리 무서운 급성장염도 즉효라네요.
농민시장에는 고양이 뿔을 내놓고 별의별 민간약들이 다 있습니다. 제 친구 하나는 치질이 심해 수은이 들어간 약을 개인에게 사서 쓰다 결국 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강석주 부총리의 조카였고 부는 인민보안성 장성이었는데 특권층들도 그 유혹을 어쩌지 못하는 슬픈 현실입니다.
그의 부인은 불행하게도 장마당에서 파는 염색약을 잘 못 써 아기를 유산하기도 했습니다. 일부사람들은 벌독이 관절염에 좋다고 대성산 동물원에 찾아가 벌을 부위에 직접 쏘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인피를 빼기 위해 거머리를 이용하기도 하죠.
기계를 정기적으로 정비하듯 사람도 한 보름정도 단식을 하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소문에 숱한 사람들이 휘청거리며 굶기도 했습니다. 한 때는 새벽 첫 오줌이 만병통치약이라고 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마시는 해프닝도 벌어졌죠.
철도성병원에서는 한 의사가 B형간염 예방약을 개발해 어느 국제전시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것이 시중에 가짜 약으로 유통돼 많은 사람들이 예방은커녕 오히려 간염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간염에 걸리면 민물고기를 잡아 호박에 넣어 자체로 끓여먹고 쑥을 다려 마시고, 감기에 걸리면 냉수마찰로 극복하고, 외국 약은 유효기간이 몇 년 지나도 최고의 약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모두가 반 의사가 돼 자체로 진단하고 자체로 치료받는 사회. 이것이 북한식 자력갱생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