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는 당이 두 개가 있다죠. 장마당과 노동당. 그런데 장마당은 이익이 되고, 노동당은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즘 북한인민들이 항간에서 쓰는 유머입니다.
과거 '어머니 당', '조선인민의 향도의 어머니'로 칭송받던 노동당이 지금은 장마당에까지 밀리는 처지가 되다니, 그리고 주민들이 이런 유머를 대놓고 쓰다니 참 세월이 많이도 변하긴 변했습니다.
1980년대 말, 90년대 초 북한간부강연에서는 사회주의 동구권의 변화와 붕괴에 대해 이런 사실들을 급히 전했습니다.
'소련의 당원들과 공청원들은 당증과 맹증을 마대에 넣어 당 정치국에 소포로 보내고 있다. 레닌훈장, 노병훈장이 장마당에 나와 팔린다. 군복도 팔고, 당증도 팔린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그 때 든 생각이 '정말 다 되긴 다 됐구나. 훈장을 팔면 돈 몇 푼이나 받을까. 사상 사업을 소홀히 하면 결국 체제는 망하게 되어 있다'였습니다. 참 혁명적인 생각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이와 유사한 현상이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됐죠. 더 심각한 것도 있습니다.
노동당 입당에 가격이 매겨지고, 최고 존엄의 초상휘장들이 장마당에서 팔리고, 명함시계도 돈으로 거래가 되더니, 요즘은 노동당의 권위가 땅바닥에 추락해 장마당보다 못한 존재가 됐으니 말이죠.
그래서인지 북한지도부도 여기에 많이 신경 쓰고 있는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있은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 때 김정은은 연설문에서 인민이란 단어를 90번이나 넘게 언급하였습니다.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에 이어 '인민제일주의, 멸사 복무, 노동당의 본태와 성격'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만큼 수령, 당, 대중의 혼연일체에 문제가 있고 그것이 심각하다는 방증이겠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한다는 간부들이 부정부패에 앞장서고 있고, 인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한다면서요.
최근 진행된 이산가족상봉의 현실도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렵사리 성사된 이번 20차 상봉에 나온 남과 북의 가족들을 보면 80%이상이 80세 이상 고령입니다. 33살에 헤어진 98세의 아버지는 65년 만에 만나는 두 딸에게 꽃신을 내 놓아 사람들을 울렸죠. 헤어질 때 사다주겠다던 꽃신을 65년만에야 약속을 지켰습니다. 결혼 후 6개월 만에 헤어진 신혼부부와 배속에 임신한 아들은 백발이 다 돼서야 서로 만났습니다. 새 각시는 남편의 체취가 담긴 장기알, 구두, 놋그릇을 60년 넘게 보관하고 있었다죠.
1972년 21살의 나이로 북한에 납북된 어부는 43년이 지나서야 어머니를 비로소 만나게 되었고요. 어떤 가족들은 부모, 형제가 죽은 줄 알고 30년 넘게 제사도 지내왔습니다.
남쪽에서 이산상봉을 신청한 13만여명 중에 6만여명은 벌써 노환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생존자 6만 여명도 지금처럼 하면 상봉의 희망이 전혀 없습니다.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노동당이 장마당을 이기려면 이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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