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어여쁜 빨간 꽃, 향기롭고 빛깔고운 아름다운 빨간 꽃. 앓는 엄마 약 구하러 정성 담아 가꾼 꽃,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이 꽃 이 꽃 빨간 꽃.
산기슭에 곱게 피는 아름다운 진달래, 산기슭에 피여 나는 연분홍빛 살구 꽃.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이 꽃을 사시면, 설음 많은 가슴에도 새봄 빛이 안겨요.
북한의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에 나오는 주제가입니다. 1930년 항일무장투쟁시기 김일성이 손수 창작하여 인민들을 혁명에로, 항일에로 불러일으켰다지요.
가극의 종자는 나라 잃고 가난한 민중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통과 슬픔뿐이며 투쟁만이 살길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농촌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 머슴꾼 가정이 겪는 불행과 고통을 주인공 꽃분이의 생활과 심리세계를 통하여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밝혀내고 있습니다.
'꽃 파는 처녀'가 북한사회에 미친 영향은 그야말로 지대합니다. 착취계급에 대한 증오심, 지주의 탐욕과 악랄성, 어머니와 가정을 지켜려는 한 연약한 처녀의 처절한 몸부림.
이는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의 정당성, 북한체제 수립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전파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예술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해외공연도 많이 했고 작품을 관람하던 일부 관객들이 지주의 행패가 너무 가증스럽고 미워 분노를 참지 못하고 무대에 뛰어 올라 공연이 자주 중단된 해프닝도 있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오늘날 북한의 현실은 '꽃 파는 처녀'에서 나오는 사상성과 이념이 많이 훼손돼 있습니다.
장기적인 '고난의 행군,' 식량난, 경제의 악화로 처녀들은 부유층이 많이 다니는 평양의 외화상점, 호텔, 기차역들에서 자기 성을 헐값에 팔고 있죠.
그들이 남성들에게 하는 말 역시 '꽃 사시오'라네요. 때론 '제 꽃을 사시지 않겠어요?'라고 묻는답니다. '꽃 사시오'가 인제는 여성들의 성을 팔고 사는 은어가 되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가장 절정에 달했던 1990년대 중후반에는 처녀들이 돈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가 필요한가라는 호객꾼들의 질문에 '그냥 배불리 한 끼 먹여만 주세요.'라고 했다 네요.
제가 중동지역의 외국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의 여러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북한현실에 습관 된 사람이라 별다르게 느끼지 못했지만 외국인들은 논판에서 일하는 여성들, 고속도로 건설장들에서 곡굉이질을 하는 여성들, 등짐으로 흙을 나르는 여성들을 보고 깜짝, 깜짝 놀라더라고요.
저 여성들은 왜 저렇게 힘든 일을 하느냐, 남자들은 안 보이고 왜 농촌에는 여성들만 보이느냐, 우리나라에서는 여성들을 밖에도 잘 내보내지 않는다, 대체로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은 나라의 주인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성들은 혁명의 한 쪽 수레바퀴를 끌고 나가는 동력이다, 라고 말씀 하셨다'고 위대성 선전도 곁들여서 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은 편안치 않았죠. 저도 강원도 문천에서 3대혁명소조를 해봐서 농촌실정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지난 27일 북한은 11월 16일을 '어머니의 날'로 새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평양화초연구소를 현지 지도한 자리에서 '국가적으로 어머니의 날이 제정된 만큼 꽃을 어머니나 아내에게 주면 좋아 할 것'이라고 말했다죠.
그는 또한 스승을 찾아갈 때나 문병을 갈 때 꽃을 준비해서 갈 수 있다고도 했다 네요.
생화는 김일성동상이나 혁명역사 연구실에만 가져가는 줄로만 알았던 북한에서 인제는 스승이나 환자, 어머니나 아내들에게도 차례질 수 있다니 정말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