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에는 '알쌈이'라는 새로운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 끼리끼리 조합을 뜻하는 은어입니다.
'여 최 동무. 한 가지 묻자. 재정과장, 그 양반 당 비서 알쌈이지? 그래서 요즘 잘 나가는 거야?' '뭔 소리 해? 그는 총국장하고 알쌈이야. 당 비서 알쌈은 간부처장, 후방과장이지. 우리끼리니 말인데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직장에서 제일 친한 최 동무와 박동무사이 술자리 대화입니다. 이들도 서로 알쌈인지도 모르죠.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베어링을 만들 때 알들이 떨어지지 않게 끼어 넣는 알쌈에서 생겼다는 말도 있고, 보통 탄알을 한 세트로 묶어 놓은 것을 알쌈이라고 하죠.
어쨌든 북한에서는 허용되지 않은 간부들 사이 또는 가까운 인맥들 사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 유착을 표현한 신조어입니다.
요즘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장군님식솔,' '한집안 식솔'이 수천, 수만 개의 알쌈으로 분화되는 현상이 북한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판 관경 유착이라고 할까요. 이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0년대부터 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경제가 피폐해지고 재정이 파탄나자 관료들은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죠. 외화를 벌어 김정일에게 상납할래, 직원들에게 배급을 줄래, 또 던힐 담배를 떨어뜨리지 않고 피울래, 저녁에는 명태 한 마리에 맥주한잔을 먹을래, 정말 돈을 벌고 생존하는 것은 사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당국도 배급과 월급을 주지 못하는 터라 어쩔 수 없이 한 쪽 눈을 감고 허용을 하던 참이었죠.
그래서 군에 수많은 외화벌이 회사들이 들어섰고 중앙기관들도 저마다 회사들을 차렸습니다. 중앙당 간부들, 군 장성들, 검찰 소 검사들, 보위부 요원들, 보안성 보안 원들 할 것 없이 달러 맛을 들이기 시작했죠.
그리고 이들은 점차 이권화 되어 알쌈들을 만들어 갔습니다. 여기서 가장 정점에 있은 것은 봉화조입니다. 북한판 태자당이라고도 하는데요, 태자당이란 중국의 고위층 간부들 자녀들이 만든 친목모임입니다. 사실 친목을 도모한다고 하지만 서로의 경제적 이익,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고도로 유착된 이익단체죠.
봉화조 리더는 국방위 부위원장 오극렬의 아들 오세원이라네요. 그리고 강석주 부총리 아들 강태승, 김정일 서기실 부부장 출신인 김충일의 아들 김철운,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의 아들 김철, 김창섭 보위부 정치국장의 아들 김창혁도 멤버라고 합니다.
외신에 따르면 이들은 초정밀 100달러짜리 위조지폐 제작과 유통, 헤로인 밀거래 등 불법 활동에도 관여하고 있다 네요. 북한내부에서도 마약을 유통시켰다고 합니다. 김정은도 이 봉화조와 가깝게 지냈고 또 가입하기도 했다 네요.
작년 김정은의 형 김정철이 싱가포르에 떴을 때도 이들이 대동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실세 알쌈은 장성택 알쌈일 겁니다. 청년동맹 간부들이 요즘 잘 나가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최근 북한에서는 총참모장 이영호 교체에 이어 많은 간부사업이 물밑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장관급이 7명이나 바뀌었죠.
금속공업상, 농업상, 전자공업상, 체육상이 각각 교체됐고, 먼저는 기계공업상, 재정상, 교육위원장도 바뀌었습니다.
김가 왕조의 그 철두철미한 통제와 수령절대주의 체제하에서도 김정일 사람들, 김정은 사람들, 그리고 장성택 사람들 등 알쌈이들이 만들어 지고 작동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과 서로의 이합집산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가 봅니다.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