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북한사회를 풍미하는 구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전시동원체제하의 북한에서 구호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중에는 깊은 여운을 남긴 인상적인 것들도 있습니다. '세상에 부럼 없어라'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과 같은 구호들이 대표적일 겁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 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 없어라.'
정치행사나 망년회 같은데서 당 비서가 선창하면 눈시울을 붉히며 따라 부르던 '세상에 부럼 없어라' 노래입니다. 평양 중심부의 금성중학교에는 이 구호가 수십 년 전부터 걸려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구호는 색이 바랠 대로 바랬습니다. 오늘날 북한 실상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부러워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 신문기자는 꼭 같은 제목으로 북한의 90년대 식량난을 그린 책을 써 영국의 '새뮤얼 존슨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때 북한의 자긍심이 이제는 기아와 빈궁을 대표하는 상징이 된 셈이죠.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중의 하나는 중국으로 탈출한 의사 '김 씨'가 발전상에 놀라는 장면과, 한 민가에서 우연히 이밥에 고기가 섞인 '개밥'을 보고 '중국의 개는 북한의 의사보다 잘 먹는다'고 한탄하는 장면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개에게 먹다 남은 '이밥에 고기 국'을 주는 것은 제일 푸대접하는 건데 말이죠.
지금 북한에서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구호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는 아마도 한때 유명했던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의 후속작일 겁니다.
수령이자 곧 당이고, 조국이고, 인민들의 운명인 북한에서는 조선이자 곧 김정일이고, 가까운 미래에는 김정은일 것입니다. 즉 '조선이 결심하면 한다'는 '김정일이 결심하면 한다'를 의미하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는 결심만 하면 300만의 자기 인민도 굶겨죽이고, 전체 국민의 키와 수명도 줄일 수 있습니다. 국토의 80%에 달하는 산을 통째로 민둥산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죠. 혈맹인 중국과 국제사회가 아무리 말려도 핵무기개발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도 기어코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승인한 '심화조'와 같은 사건을 통해 충신들을 검증하고 거추장스런 일부는 숙청하기도 하며, 부작용이 생기면 그 책임을 채문덕과 같은 자들에게 넘겨씌워 또 다른 숙청과 공포를 조성하고 수용소에 보냈던 사람들은 '장군님 배려'로 다시 원상복구 시키기도 합니다.
손바닥 뒤집듯 병 주고 약 주고, 죽인사람을 또 죽이기도 하고, 평생 충성한 충신을 하루아침에 반역자로 몰아 총살하기도 하죠.
요즘은 조선인민도 결심하면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외부와의 연계입니다. 북․중 국경지역에서 핸드폰 단속이 강화되자 앞에 물 한 소랭이 떠 놓고 머리에는 가마뚜껑을 쓰고 전화를 해 전파탐지를 피한다고 합니다.
이걸 막으려면 물을 말리고 소랭이와 가마도 모두 없애야 할 텐데 이런 것도 조선이 결심하면 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전기가 부족해 핸드폰을 충전하지 못하면 1.5V짜리 건전지 2개를 연결해 통화를 한다나요. 조만간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축지법을 쓰는 진짜 스파이더 맨도 나오지 않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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