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으로 떼먹는 대대장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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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차가운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지난시기에는 첫 얼음이 어는 11월 1일 경이면 반년식량인 김장 전투를 모두 끝내군 했는데 요즘은 지구 온난화 때문에 11월 중순이 넘어야 아마도 가장 좋은 김장계절이 되죠?

소식을 듣자니까 올해 남새농사가 시원치 않아 북•중 국경지대에서는 무와 배추를 많이 밀수한다고 합니다. 가격도 꽤 올랐고요.

반대로 아랫동네 남쪽에서는 배추농사가 너무 잘돼 밭을 배추채로 갈아엎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평양에 있을 때 이와 유사한 소식, 교육을 자주 받은 기억이 있죠. '썩고 병든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의 욕심과 착취근성, 시장의 무규율성으로 과잉생산, 유통이 상습적으로 벌어지고 이 때문에 많은 새 상품들이 바다에 통째로 버려지고 있다고요.

당시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쉽게 이해하고 있죠.

원인은 해당 상품이 단시일 내에 너무 많이 공급돼 가격이 폭락하고 결국은 상품공급 비용이 상품가격을 초과하면 상품의 가치가 모두 상실 해 파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배추의 경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가격이 폭등하면 농민들이 너도 나도 배추를 심고 또 의외로 대풍이 들게 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세계에서는 수요와 공급, 그리고 이것이 일치돼서 형성되는 가격을 포함한 시장원리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마법이라고 믿습니다. 인위적으로 계획화를 통해 시장에 개입하고 통제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손이 이를 자동적으로 다 해결해 준다고 보는 것입니다.

올 겨울 배추부족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집단은 군인들이 아닐까요? 며칠 전에 평양에서 대대장, 대대정치지도원대회가 8년 만에 열렸더군요. 소식을 접하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평양에 있을 때 떠돌던 군 관련 은어, 유머였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군의 약탈이 계속 되자 인민군은 '공산군'으로 불리기 시작했죠.

그리고 군에 대한 공급이 너무 피폐해지자 군인들은 이런 유머로 자신들의 신세를 달랬습니다. '군단에서는 군데군데 떼먹고, 사단에서는 사정없이 떼먹고, 연대에서는 연달아 떼먹고 대대에서는 대대적으로 떼먹는다.' 그러면 맨 아래 사병들에게 남는 건 멀건 소금국에 폭탄 맞은 잡곡밥 한 그릇도 안 되죠.

군복도 몇 년에 한 벌, 신발도 역시 같고. 그나마 해당화 담배는 몇 갑씩 차례지나요?

그러던 군인들의 생활이 요즘은 좀 낳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듣자니까 제가 있을 때는 비행기석유까지 빼돌려 시장에 내다팔아 군인들이 생계를 유지했는데 요즘은 탱크 배터리를 몰래 내다 판다면서요. 이 돈으로 쌀 40kg 마련 가능하다고 합니다.

배터리가 없으면 탱크 발동은 어떻게 거는지 모르겠네요. 하긴 기름이 없어 1년에 단 한번밖에 시동을 걸지 않는다니 석유가 없어 쓰지 못하나, 배터리가 없어 움직이지 못하나 마찬가지겠죠.

중국은 올해 7달 동안 북한으로 가는 석유파이프를 잘랐습니다. 작년 3차 핵실험 그리고 김정은의 장성택 행정부장 숙청이 계기가 됐죠.

이번 대대장, 대대정치지도원대회를 통해 대대적으로 떼먹는 문화만 고쳐도 큰 성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