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가 11월 11일이었죠. 한국에서는 이날을 일명 '빼빼로 데이'라고 합니다. 빼빼로는 초콜릿으로 만든 과자 상표입니다.
이날은 대한민국의 독특한 기념일인데요, 연인들이 초콜릿을 서로 주고받는 밸런타인데이처럼 빼빼로 데이에도 젊은이들과 연인들은 초콜릿으로 만든 과자인 빼빼로를 서로 주고받습니다.
1자가 네 번 들어간 것이 빼빼로 과자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부쳐진 것인데요, 최초시작은 1995년 수학능력시험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1995년 11월 11일은 해마다 치러지는 대학입학을 결정하는 수능시험 11일 전으로, 이 날 빼빼로를 먹으면 수능을 잘 본다는 속설로 극히 일부 학교에서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빼빼로를 선물하면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일설에 따르면 1994년 부산을 비롯한 영남의 여중생들이 재미로 서로 주고받았다고 하는데요, 이들은 '빼빼로처럼 날씬해져라'는 뜻으로 선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청소년층의 이러한 놀이문화를 빼빼로 제조사인 롯데제과가 판촉을 위해 현재의 형태로 명절로 정했고, 상품광고를 위해 만들어 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일부 청소년들의 선물문화가 전 국가적으로 퍼진 셈이죠.
또한 이날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2003년 11월 11일, 한국 정부기관인 행정안전부소속 손해보험협회는 빼빼로 대신 가래떡을 즐기자는 의미에서 사내 행사로 '가래떡 데이"를 열기 시작했으며, 이는 대한민국에서의 '가래떡 데이'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11월 11일에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가래떡 데이와 관련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답니다.
특이한 날을 정부나 기업에서 특이하게 기념하고 활용하는 것은 대중의 인기, 수요를 생명으로 여기고 있는 시장경제, 자본주의에서 생명과도 같은 필연인 것 같습니다.
하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제창하는 북한에서도 이는 결코 예외가 아니죠. 북한은 9월 9일을 정권 창건 절로, 10월 10일을 당 창건절로 기념하고 있죠. 10월 10일은 은어로 '쌍십절'로 불리기도 합니다.
3대째 김가 왕조권력을 세습한 김정은도 할아버지, 아버지를 닮아 숫자에 집착하고 있죠. 그는 12자가 세 번 겹치는 2012년 12월 12일에 '광명성 3호' 발사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날 로켓발사는 성공으로 평가하고 있죠.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김일성과 나이를 맞추기 위해 생일을 1941년에서 1942년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버지가 70돌 생일을 맞는 해 아들이 40돌이 되는 식이죠.
숫자에 대한 집착은 8자를 유난히 좋아하는 형제나라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자국에서 개최된 제29차 베이징올림픽 경기를 2008년 8월 8일 8시에 시작했습니다. '8'발음인 '파'가 '돈을 번다'는 '파차이'발음과 비슷해 그렇게 열광한다고 합니다.
이날에 맞춰 산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를 낳는 경쟁도 벌어졌는데요, 올림픽 베이비를 염두에 두고 서둘러 결혼했던 신혼부부들은 출산 예정일에 오차가 발생하자 제왕절개 수술일자를 저마다 아예 길일인 이날로 맞추어서 전국 유명 산부인과에는 개막식 날 분만 예약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공산당이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인민들이 돈을 많이 버는 8자를 좋아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한다는 북한에서는 노동당과 정부가 '쌍십절'을 좋아하고, 그렇다면 인민들이 '손 없는 날' 시집, 장가가는 것은 막을 이유가 없겠죠.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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