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가자 도시로, 오르자 아파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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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십니까. 자본주의 세계에서 보통 여자들의 소원은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교외에 전원주택을 하나 가지는 것입니다.

한 겨울 벽난로 앞에 앉아 불을 때면서 고구마도 구워먹고, 영화 한편 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꿈입니다.

북한에서 여성들의 구호는 다릅니다. '가지 도시로, 오르자 아파트로!' 제가 3대혁명소조로 농촌에서 일할 때 생긴 말입니다.

보천보전자악단 리경숙이 부르는 노래 '도시처녀 시집와요'의 '고개 넘어 령을 넘어 뻐스를 타고, 차창밖에 웃음꽃을 방실 날리며, 새 살림의 꿈을 안고 도시처녀가 문화농촌, 리상촌에 시집을 온다'는 가사는 현실과 맞지 않는 노동당의 희망사항인 것 같습니다.

농촌처녀들의 '가자 도시로, 오르자 아파트로'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시총각을 붙잡아 결혼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농장이나 광산, 탄광, 교원 같은 어렵고 힘든 직업은 누구나 기피해 당에서 직장을 바꾸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던 대학의 한 교수는 교원 하기가 싫어 강의시간에 정신병자 흉내를 내 까무러치기까지 했습니다. 일부러 정신질환자 역까지 하자니 얼마나 고심이 많았겠고, 또 능력은 얼마나 뛰어 납니까. 그는 끝내 교원을 그만두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강의를 할 수 없다던 노동능력상실자가 어느 날 갑자기 담배 합작회사에 취직하더니, 외국에만 돌아다니고 달러만 잘 쓰면서 호텔에 붙어살더라고요. 참 희한하죠. 직업이 사람을 정신병자로도 만들고 또 멀쩡한 무역일꾼으로도 만듭니다.

농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남자들이 다 도망가고 몇 명 남지 않았습니다. 작업반장, 분조장, 뜨락또르(트랙터)운전수, 소 달구지꾼을 빼고 나면 모두가 여자입니다.

여성들이 가래질도 하고, 모판도 키우고, 추수도 합니다. 북한에는 '쌀은 곧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말도 있는데 결국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연약한 여성들의 손에 맡긴 셈이죠.

요즘 농촌처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기쁜 소식이 하나 전해지고 있습니다. 평양시 만수대지구에 내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를 맞아 살림집건설이 마감단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초고층 아파트도 들어서고 있으니 오르자 아파트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잘 하면 벼락부자도 될 수 있습니다. 평양 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파트는 야매로, 즉 뒷거래로 한 4만-5만 달러 정도 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일 비싼 아파트는 창광산 호텔 뒤 인민무력부 은덕총국에서 건설한 집이었는데, '심화조 사건' 때 안전원들의 고문에 혼이 나가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진통제 주사를 놔줄 때도 '알겠습니다. 죄다 말하겠습니다'라고 헛소리 치던 서윤석 전 평양 시 당 책임비서도 여기서 살았습니다.

당연히 평양의 최고아파트는 중앙당 비서, 부장들이 사는 러시아대사관 맞은편 아파트와 중앙당 간부들이 사는 창광거리입니다. 그러나 이 집들은 엄격히 통제해 사고 팔 수 없어 시가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보통강구역에 있는 다른 고급 선물 집들은 사고 팝니다. 언젠가 이것이 문제가 되어 말썽을 일으켰지만, 돈만 있으면 군인들이 국경도 마음대로 넘겨주고, 명함시계와 당기 초상화도 시장에서 팔고 사는데 집이야 대수겠습니까.

어쨌든 이번 만수대지구 살림집 건설을 계기로 더 많은 농촌처녀들의 '가자 도시로, 오르자 아파트로'의 꿈이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