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또는 김치지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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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바야흐로 김치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올해 김장을 다 담그셨는지요?

사실 김치는 우리 한민족의 식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입니다. 특히 북한에서 김장은 반년식량으로 여길 만큼 아주 귀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김장하는 데는 정성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김치 종류도 계속 개발해 내고 있죠.

김치꾸미에 소고기도 넣고, 사골을 우려 김치 물로도 쓰고, 또 그 유명한 개성식 보쌈김치에는 잣, 밤 등 안 들어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김장독은 땅에 꼭 묻어야 제격이죠.

그러나 요즘 서울에서는 옛날에 흔했던 모습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경제가 발전해서이기 때문이기도 하죠.

1년에 한 번 겨울에 많이 담그는 김치문화도 지금은 1년 12달 내내 김치를 담그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또한 김치냉장고가 개발돼 이제는 김치를 독이 아니라 플라스틱 통에 넣어 냉장고에 1년 내내 보관하고 있죠. 온도 조절로 묵은지 김치, 동치미 등 온갖 종류도 다 제조, 보관이 가능합니다.

또 김치의 상업화도 너무 발달돼 집에서 굳이 담그지 않아도 사시장철 신선한 김치를 상점에서 또는 홈쇼핑으로 사서 먹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상품으로 포장돼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전 세계에 수출 판매도 되고 있죠.

또 하나의 흥미로운 뉴스도 있습니다. 김치찌개가 남한 직장인들의 점심메뉴 1위로 5년 연속 당첨된 것이죠. 2013년 3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직장인 768명을 대상으로 한 '점심비용과 메뉴'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입니다. 응답자의 39.3%가 김치찌개를 가장 많이 먹는 점심메뉴로 꼽아 또 1등을 했다죠.

그러나 북한에서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경제사정이 열악해 식탁반찬사정도 어려워져 만날 먹는 김치 또는 김치지지개는 제일 '안 좋은'음식으로 치죠. 오죽하면 만담에도 그렇게 소개가 됐겠습니까.

한 직장인이 자기 집 마누라와 싸우면서 만날 점심도시락 반찬으로 '김치 또는 김치지지개'만 싸준다고 타발하죠. 세대주를 공경하고 대접해주지 않고 하찮은 것을 계속 싸준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김치 또는 김치지지개'는 대접받지 못하는 남편의 일일 도시락 반찬 대명사가 됐습니다. 사실 그 김치꾸미에 동태가 듬뿍 들었거나 김치찌개에 돼지고기가 넘쳐나면 이러지 않겠죠.

조사된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점심메뉴를 선택할 때 우선 고려되는 사항이 '맛'보다 '가격'인 것으로 나타났다 네요. 요건 좀 씁쓸한 결과죠. 하긴 '가격'을 선택한 응답자가 전체의 82%로 가장 많았고, '맛'이라는 응답자가 74.2%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설문조사 응답자 중 60%가 '점심 값이 많이 올랐다'고 답해 물가 상승을 체감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죠. 실제 직장인들의 점심 값은 지난 2009년 평균 5,193원에서 2013년에는 6,219원으로 올랐습니다. 한 끼 점심에 5달러-6달러 든다는 얘기입니다.

김치 또는 김치지지개를 매일 점심 들어도 맛있는 날이 올 때까지 음식개발과 경제발전을 더 열심히 해야겠죠?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