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냉수마찰

0:00 / 0:00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경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과 소한의 계절,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양의 기온도 뚝 떨어져 영하를 기록했고, 백두산은 벌써 영하 10도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한때 평양은 평양화력발전소에서 보내는 중앙난방으로 뜨끈뜨끈하게 지냈습니다. '혁명의 수도 평양'을 자랑하는 영화에 나오듯이 왼쪽 수도꼭지를 틀면 더운 물, 오른쪽을 틀면 찬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죠.

그리고 바닥이 지글지글 끌어 온 겨울 팬티바람으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밖에 나가 놀면서 언 손을 더운물로 녹이다 혼살 난 적이 있습니다. 언 손은 찬물로 녹여야 한다는 상식을 모르던 어릴 적 일이죠.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옛말이 되었습니다.

더운물은 고사하고 찬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난방은 관이 동파하지 않을 정도로 미지근한 물을 이따금씩 돌리는 정도입니다.

혹시 집안 물탱크의 물이 어는 것을 목격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제 친구 집에 설날 놀러갔는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물을 치려다 탱크가 얼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집을 둘러보니 화분도 다 죽고, 그렇게 많던 어항 속 금붕어, 공작어도 하나도 없더라고요.

사람들은 집안에서 동발을 신고 솜옷을 입고 지내야 합니다. 보통 세수는 고양이세수를 하구요.

목욕은 빠르면 한 10일에 한번 하나요? 너무 추워 비닐목욕주머니를 사용합니다. 물을 한 소랭이 끓여 목욕주머니에 넣으면 증기로 주머니가 불어나고 안은 더워집니다. 여기서 그야말로 물을 한 방울 한 방울 아껴 목욕을 하죠.

어려운 환경으로 북한에는 독특한 문화도 있습니다. 바로 냉수마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겨울이든 여름이든 찬물을 떠 놓고 수건을 물에 적신 후 온 몸을 닦는 속성 식 샤워입니다. 건강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으로도 통합니다.

한 겨울 잠자리에서의 난방방법도 독특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기가 오면 백열등을 켜 이불속에 넣고 그 열로 덥힙니다. 모기장처럼 비닐박막으로 잠자리를 가리고 그 안에 백열등을 켜도 괜찮습니다.

일부는 중국산 전기담요, 불돌도 사용하고요. 이것이 없을 경우 자체로 동선을 촘촘히 늘어뜨려 전기깔판을 만듭니다. 선 길이로 온도를 조절하죠.

이것도 사실은 전기가 와야 가능합니다. 정전이 되었을 경우 뭐니 뭐니 해도 동침이 최고입니다. 그것도 몸에 걸친 것이 없을수록 효과만점이죠. 이불을 뒤집어쓰고 꼭 붙어 자면 온 밤 문제없습니다.

찬바람을 막기 위해 베란다에 2중창을 하고 좀 사는 집은 유리로, 기타는 비닐박막으로 막는 것이 보통입니다. 유족한 세대들은 베란다에 연탄난로를 놓고 물을 끓여 침대크기의 난방을 보장하기도 합니다.

남한에서의 겨울나이는 이에 비하면 천당입니다. 지역에 관계없이, 집의 크기에 관계없이 어디를 가나 더운 물, 난방이 보장됩니다. 당연히 쓴 만큼 돈은 내야죠.

그렇다고 모두가 뜨끈뜨끈하게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침실만 몇 시간 덥히는 가정, 거실만 덥히는 가정 등 다양합니다.

두툼한 옷을 입고 지내기도 하고, 돈을 아끼기 위해 전기담요를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꼭 세숫물을 화장실 물로 쓰는 금검절약의 화신인 가정들도 있습니다.

'고진갑래'라는 말도 있듯이 차갑고 힘든 겨울이 가면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감사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