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제품이 88제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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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요즘 북한에서는 이른바 '88제품'이라는 것이 인기가 있다죠? 83제품을 88제품이 몰아내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88제품이란 상품에 찍혀 있는 바코드가 88로 시작되는 남한상품을 의미하는데요, 북한주민들,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은 각 나라에서 생산되는 바코드번호를 다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45, 49, 중국은 69, 이렇게요.

이전에는 '아랫동네 상품', '상표 없는 옷'으로 통했고 가끔씩 위험은 하지만 원산지를 증명하기 위해 'MADE IN KOREA'를 보여주곤 했는데 지금은 대신 88이라는 은어로 통용된다고 합니다.

또한 시장에서는 진품(眞品)과 가품(假品)을 가리기 위해 중국산 코드 검사기도 판매되고 있다죠. 기계에 바코드를 갖다 대면 진짜는 녹색, 가짜는 빨간 등이 들어오는 식입니다. 비록 많이 폐쇄는 됐지만 주민들은 나름대로 외부세계의 변화에 적응해가고 있는 셈이죠.

북한에서 '남조선 상품'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됐습니다. 의류, 화장품, 신라면, 전자제품들을 많이 좋아했죠. 여성들 속에서는 아랫동네 화장품을 대놓고 찾고 서로 소개해주었습니다.

각종 의류는 'MADE IN KOREA'를 가위로 자르고 유입, 유통이 됐죠. 질을 보면 남한산인지, 일본산인지, 중국산인지 다 가려볼 정도였습니다.

손전화기가 처음으로 도입됐을 때 간부들은 삼성핸드폰을 대놓고 구해 쓰고 다녔죠. 그리고 DVD, 컬러TV, 녹화기 등 전자제품도 아무 거리낌 없이 들여 가군 했습니다.

보험총국을 비롯한 외화를 잘 버는 회사들은 컴퓨터도 대부분 남한산을 구매해 사용했죠. 상표가 붙은 부위는 보이지 않게 테이프를 붙이기도 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떨어져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해외에 파견된 외교관이나 북한주재원들이 가장 먼저 사는 것은 남한산 전기밥솥이나 고압밥가마였습니다. 특히 안남미를 많이 파는 동남아시아지역은 더하죠. 밥이 찰 지게 잘 되니까요.

이것이 점점 더 확산돼 지금은 '쑹 냉장고', '쥐 세탁기'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좀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은 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북한주민들이 만든 은어입니다. '쑹'은 SAMSUNG의 SUNG자를 의미하고 '쥐'는 LG의 마지막자라네요. 정말 기발합니다. 그리고 남한의 쿠쿠밥솥은 신흥부유층, 고위층 사모님이나 며느리들 사이에선 없으면 아예 사람취급을 못 받는다면서요. 일부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신제품, 최신모델을 구매하는 것이 유행이랍니다.

북한주민들이 이렇게 남한상품, 상품바코드에 관심이 많고 쓰임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북한이 만드는 상품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면서요.

남한이나 일본, 중국 상품코드 숫자는 웬만한 중학생들까지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조선코드는 86으로 시작하지만 주민들은 83제품이란 말로 비아냥'거리기만 한다고 합니다.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