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에는 이런 유머도 있습니다. 제목은 '빨리 대상자를 구해주세요'입니다. 집에서 부모님 늘그막에 3대독자 외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사랑을 온통 독차지하고 있는 영남이가 두툼한 돋보기 안경너머로 아침에 채 읽지 못한 노동신문의 '남조선 란'을 부지런히 뜯어보던 아버지에게 해맑게 물어봅니다.
'아버지, 누나와 친하던 아저씨가 왜 오지 않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좀 난처해할만 하지만 아버지는 준비라도 해놓은 듯 이렇게 선뜻 대답합니다.
'그들은 관계를 끊었다.'
'전번 주까지는 그처럼 사이가 좋았는데 왜 갑자기 그렇게 되었나요?'
'그의 아버지가 3일전에 퇴직을 하였는데 이제는 국장이 아니란다. 그러니 그가 너의 누나한테 짝이 기울지 않니?'
'아버지, 그럼 나한테도 빨리 대상자를 구해주세요!'
'뭐? 이제 겨우 15살짜리가 대상을 구해?'
'몇 해 후에 아버지가 퇴직해서 더는 처장노릇을 못하면 나도 누구에게나 짝이 기울게 아니나요.'
원래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집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이와 정 반대의 어느 한 어머니와 딸을 볼까요? '넌 누구하고 결혼하겠다는 거냐?'입니다.
딸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가방을 홱 집어던지고, 코트단추를 풀어헤치면서 어머니에게 기분 좋게 하는 말, '오늘 웬 사람이 나에게 남자를 하나 소개해 주었어요. 아버지는 국장이고, 삼촌은 대외부문에서 일하고, 형은 무슨 공장 지배인이래요. 그만하면 괜찮지요?'
그런데 허파에 바람이 가득 찬 딸에게 어머니가 점잖게 건넨 한마디, '다 좋구나. 그런데 넌 도대체 그들 중 누구하구 결혼하겠다는 거냐?'
북한에서 노동당은 청춘들에게 나라와 집단, 동지를 위해 자기를 헌신할 것을 가르칩니다. 도시처녀는 농촌으로 시집가고, 여성들은 나라에 몸을 바친 영예군인들에게 먼저 시집가라고요.
남자들에게는 10년 만기 군 복무이후 농장, 탄광, 광산 집단진출이 기다립니다. 동지들과 피와 살을 나누는 것을 특별한 희생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교양 받습니다.
그러나 요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죠. 제가 먼저 방송에서도 소개해 드렸지만 도시처녀들의 농촌시집보다는 농촌 여성들 속에서 '가자 도시로, 오르자 아파트로!'의 구호가 등장한지는 참 오래도 됐죠?
그리고 여성들 속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는 '열'렬히 사랑하는, '대'학을 졸업한, 노동당원증을 '멘', 이불장, 옷장, 냉동기 세탁기 등 5장 6'기'를 다 장만한 '열대메기'라는 내용도 소개해 드렸을 겁니다.
최근에는 선호하는 배우자 직업이 권력기관인 보안원으로 회귀한다고 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외교관, 무역회사 직원, 선원, 운전수 등도 인기가 있지만 '당 기관이나 행정기관 등의 권력기관에서 일하는 남자들만큼의 인기를 뛰어 넘을 수가 없다'고 하네요.
특히 국경지역에서 더 인기가 있다는데요, 불법월경 단속, 밀수나 장사를 감시하면서 많은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만간 신의주의 어느 집 딸이 뛰어 들어오면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소리칠 것 같은데요.
'오늘 웬 사람이 나에게 남자를 하나 소개해 주었어요. 아버지는 국경경비대 연대장이고, 삼촌은 보위부에서 일하고, 형은 무슨 공장 보안원이래요. 그만하면 괜찮지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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