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천년을 보증하고 만년을 담보하는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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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존경하는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북한에서 환율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천년을 보증하고 만년을 담보하게 생산과 건설의 질을 보장하라는 노동당의 구호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북한원화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급속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후계자 김정은 생일과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2012년을 맞으며 돈을 많이 푸는 모양입니다. 이 속도라면 이내 강제적인 화폐교환을 또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모두들 기억하시죠? 2009년 11월 17년 만에 단행한 화폐교환을 말입니다. 당시 100원을 1원으로 바꿔 큰 폭의 원화 가치절상을 시도했습니다. 교환 시기, 교환 액을 모두 제한해 장사로 먹고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타격을 입었죠.

북한통치역사상 처음으로 총리가 인민문화궁전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사죄했다는 소식이 외부에 전해졌습니다. 주민들이 항의하는 소요사태가 발생했다느니, 몇몇 사람들은 반항의 표시로 김일성초상화가 새겨진 돈을 불태워 버렸다느니, 누구누구는 사전에 비밀을 유출시켜 총살되었다느니 등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소식들이 계속 새어 나왔습니다.

외환거래도 금지되었고 외화상점과 장마당이 모두 문을 닫았다는 소식, 쌀값, 환율이 폭등하고 시장이 마비되어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 급기야 몇 달 후에는 화폐교환의 결과를 따져 일생을 김정일 옆에서 충신으로, 경제일꾼으로 일 해온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했다는 살벌한 소식도 들여왔습니다.

북한당국도 '조선신보'나 '경제연구'를 통해 주장했듯이 화폐교환의 목적은 2002년 단행한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시점의 수준으로 가격과 환율을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일부 사람들이 억측한 것처럼 북한은 자유시장경제로 가는 것이 아니라, 통화팽창과 시장 확산을 억제해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더욱 강화하고, 사회주의적 경제관리원칙과 질서를 튼튼히 하기 위해 화폐교환을 단행한 것입니다.

즉 경제활동도 시장이 아니라, 계획적인 공급유통체계를 회복시켜 계획경제 관리질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에서, 화폐와 가격의 기능도 계획적 경제관리원칙이 기본인 사회주의적 경제 공간들을 효과적으로, 합리적으로 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더 잘 이용하려는 취지에서 화폐교환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북한당국이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고 있습니다. 미 달러화 환율은 화폐교환 시 1:3800 이었습니다. 100:1의 화폐교환으로 환율은 1:38이 정상이죠. 그러나 지금은 거의 5,000원선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2,200원대였던 쌀 가격은 화폐개혁 조치로 15원으로 조정됐지만, 한 달 만에 40원대 중반으로 급격히 올랐고, 지속적으로 상승해 올해 8월에는 2,000원대를 돌파하더니 지금은 4,000원을 넘어섰습니다.

하룻밤사이에 인민들의 현금재산이 100분의 1로 줄었고, 이 재산이 또 2년 남짓한 사이에 치솟은 환율과 쌀값으로 그만큼 가치를 잃었으니 여기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입니다.

외부사람들은 저에게 많이 묻습니다. 북한사람들이, 경제학자들이 초보적인 경제상식이나 경제법칙 개념이 있냐고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군 합니다. '당연히 있다. 그리고 알아도 너무 잘 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포함한 경제법칙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꼭 같다.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또 묻습니다. '그러면 왜 경제와 나라와 인민을 모두 파괴시키는 그런 식의 화폐교환을 하느냐?'

'그것은 북한에는 아무도 주인이 아니며,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주인이라는 것은 아무도 주인이 아니라는 뜻이며, 모두가 나라살림을 책임진다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가 대답을 잘 했나요?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