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미국북한인권위원회 김광진 객원연구원이 전해드립니다.
북한에서 해마다 몇 차례씩 있는 '충성의 노래모임'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김부자 생일 2차례 그리고 지금이 가장 큰 행사 때입니다. 그 중에서도 설날에 가깝고 외국에서는 크리스마스로 붐비는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 생일 12월 24일을 맞으며 진행되는 연말경연이 특별히 더 흥성이는 것 같습니다.
외워야 할 분량도 많고 긴장하다보니 경연과정과 준비에서도 수많은 웃기는 일화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한 농촌에서 있은 일입니다. 농장 관리위원회 회의실에서는 '김정숙 동지 탄생일'을 기념하여 작업반 세포들의 노래경연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꾀꼴 새로 그 이름 자자한 영희가 농산 1반을 대표하여 멋지게 노래를 불러 제끼고 과수반의 제대군인 철남이는 기타반주까지 곁들이며 흥겹게 무대를 장식합니다.
다음은 축산반 차례입니다. 제비뽑기에서도 운이 좋아야 다른 세포를 이길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나이가 제일 많은 김보배할머니가 걸렸습니다. 노래제목은 '노래하세 혁명의 전적지'인가요? 김일성, 김정숙의 항일빨찌산 투쟁을 자랑하고 혁명전적지를 천만년 길이길이 잘 꾸리고 가꾸자는 내용입니다.
평생 '돈사' 종축돼지들을 관리하면서 잔뼈가 굵은 할머니는 평시에도 흥얼흥얼 연습을 많이 해 자신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노래반주를 놓치지 않고 선창을 멋지게 뗀 할머니의 목소리에 점점 흥이 실리고 목청은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부분에서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자랑하세 혁명의 전적지, 천만년 길이길이 천만년 길이길이, 노래 불러 자랑하세'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만에야 평소에 입에 오른 아주그냥이 튀어나왔습니다. '아주그냥 길이길이, 아주그냥 길이길이, 노래 불러 자랑하세.'
긴장했던 장내에는 순간 '와하하' 폭소가 터졌습니다. 어쨌든 용기 있게 끝까지 노래를 불렀고 나이 많은 할머니의 열성을 봐 합격점수가 매겨졌습니다.
또 어느 한 공장의 문답식학습경연에서 있은 일입니다. 간부들이 '충성의 노래모임'에 솔선수범해야 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지배인, 당 비서, 기사장 할 것 없이 모두 참가하였습니다. 작품은 김정일 생일을 축복하는 대화시 '눈이 내린다' 입니다.
먼저 지배인이 무대 위에서 한 발짝 나서면서 이렇게 선창을 뗍니다. '눈이 내립니다. 2월의 강산에 눈이 내립니다.' 이어서 당 비서 차례입니다. 근데 밤새 뭘 했는지 당 비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기의 순서를 잊습니다. 눈치 빠른 기사장이 위기를 모면하며 한 발짝 나서면서 재치 있게 다시 반복합니다. '눈이 내립니다. 백두의 강산에 흰 눈이 내립니다.'
어느덧 자기도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당 비서는 성큼 나서며 큰 소리로 외칩니다. '글쎄나 말입니다.'
순간 장내에는 폭소가 터집니다. 대화 시는 이어지지만 당 비서의 얼굴은 새카맣게 질려있습니다. '장군님' 탄생을 축복하여 하늘도 눈의 꽃 보라를 백두의 강산, 2월의 강산에 내린다는 칭송의 대화신데 그 마당에 '글쎄나 말입니다'로 화답을 했으니 실수를 해도 너무 큰 정치적 실수를 한 셈이죠. 그것도 당 비서가 말입니다.
얼핏 들으면 '아주그냥 길이길이,' '글쎄나 말입니다'가 실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민을 위해 복무함'이 아니라 인민들 위에 대대로 군림하는 김 씨 일가, 역사를 외곡하고 온갖 경력을 부풀리는 김 씨 일가의 세뇌와 현실을 풍자하는 북한인민들의 심중이 여실히 담겨져 있습니다.
지금 김 씨 일가는 역사의 흐름을 거꾸러 돌려 삼대 째 권력을 세습하려 합니다. 새파랗게 젊은 27살 김정은에게 대장별을 달아 주고 당 군사위원회를 맡겨 군과 보안조직의 장악을 노리고 있습니다.
3대 세습으로 인한 참상이 북한주민들은 물로 한반도 전체에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파괴적인 화폐교환, 끊이지 않는 '150일 전투'의 노역, 전쟁의 참화로 치닫는 북한의 무분별한 군사도발, 국고의 핵무기개발 탕진, 김 씨 왕조 우상화를 위한 불꽃 놀이, 이것이 3대 세습이 짧은 시간 안에 몰고 오는 재난들입니다.
다음의 노래경연 일화가 궁금해지네요. 아마도 이런 노래, 대화시가 제격일 것 같습니다. '아주그냥 길이길이, 아주그냥 길이길이, 3마리 곰이 다 해먹고 있네.' '글쎄나 말입니다.'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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