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호박이 늘 넝쿨째로 떨어질까

0:00 / 0:00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경애하는 북한형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운 겨울날 갑자기 사망한 김정일을 추모하느라, 호상을 서느라 얼마나 고생들 많으시겠습니까.

리비아를 비롯해 한쪽에서는 독재자들이 축출돼 새 세상이 열린다고 환호성을 터뜨리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유치원 애들까지 동원돼 엄동설한에 울음을 보여야 하니 세상은 참 요지경인 것 같습니다.

북한은 한때 동구권, 특히 소련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소련영화는 인기가 좋았죠. '17일 동안에 있은 일,' '안나 까레니나,' '방패와 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북한사람들이 자다가 깨도 그 내용을 줄줄 외웠죠.

소련 역대 대통령이름은 다 몰라도 배우 슈틀리츠, 까츄샤 포, 왈렌끼 노래 등은 삼척동자도 잘 알 겁니다. 사회주의권이 이른바 수정주의바람에 휘둘릴 때 나온 영화 '계승'과 '어느 한 해변에서 있은 일'도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코미디영화 '호박이 늘 넝쿨째로 떨어질까'였습니다.

건설노동자 여럿이 집수리를 하던 중 2차 대전 때 나치독일군이 감춘 금괴를 아파트 벽에서 발견합니다. 나라에 바치면 일부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몽땅 꿀꺽하기로 결의를 합니다.

코미디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것을 감추는 것이 큰 문제였죠. 한 사람은 기발한 생각으로 공동묘지에 숨기기로 합니다. 그리고 직장은 나가지 않고 밤낮 공동묘지를 배회하죠. 누가 훔쳐가지 않나 경비를 서면서 온갖 해괴한 일들을 겪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비행장 짐 보관함에 감춥니다. 그리고 누가 훔쳐가지 않나 걱정돼 밤, 낮으로 그것을 지킵니다. 밥도, 물도 제대로 못 먹고요. 또 다른 사람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대담한 발상으로 금괴를 집안에 막 내버려 둡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갖고 호두를 까먹게 놔두죠. 이 모든 과정에 그들은 심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을 당합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휴식도 못하고, 일도 팽개치고,,,

호박은 넝쿨째로 굴러 떨어졌지만 이것을 소화시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모두 파멸합니다. 금괴도 잃고 법적으로도 책임을 지게 되죠.

평범하게 지나가는 일상이 각자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행운은 늘 찾아오지 않는다는 진리, 그 행운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천지차별이라는 심오한 진리를 코믹한 연기로 잘 보여준 매우 철학적인 영화입니다.

현재 북한상황이 이것과 매우 흡사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 학자들은 북한변화의 변곡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얘기를 해 왔거든요.

3대째 권력세습을 하는 이상한 사회주의나라, 자기 인민들은 굶겨죽이면서도 핵, 미사일 개발에 모든 자원을 쏟아 붓는 비정상적인 나라, 20만의 정치범들을 수용소에 평생 가두는 나라, 인터넷을 할 수 없는 세계 유일의 가장 폐쇄적인 나라, 정권 생존을 위해서는 동족의 군함, 영토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침몰, 포격하는 나라, 수만의 여성들이 돼지보다 못한 처지로 형제나라 중국에 인신매매되는 나라, 돈을 받고 국경경비대원들이 탈북자를 건네주는 나라, 그리고 최근에는 김정은의 사살명령으로 가차 없이 죽이는 나라, 이런 것들을 열거하려면 아마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외부에서 모두가 일치하게 평가하던 공통점은 이 모든 문제들을 결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는 김정일이 사라지는 순간 가능하다는 것이었죠. 소련영화에서처럼 '변화의 황금덩이'가 넝쿨째로 굴러 떨어진 셈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감당할지가 문제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