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가 많은’ 이들의 탈북

홍콩에서 열린 제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했던 약 18세의 북한 남학생이 지난달 16일 홍콩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해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고 현지 언론이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사진은 홍콩 과학기술대학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한 북한 대표팀.
홍콩에서 열린 제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했던 약 18세의 북한 남학생이 지난달 16일 홍콩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해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고 현지 언론이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사진은 홍콩 과학기술대학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한 북한 대표팀.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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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요즘 북한사람들의 탈북, 특히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엘리트계층의 탈북행렬이 이어져 외부의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사상초유로 중국에 파견된 류경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탈북한데 이어 가장 최근에는 홍콩에서 진행된 제57차 국제수학올림피아드대회에 참가했던 18세 북한학생 리정렬군이 홍콩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해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식에 크게 들썩이고 있습니다.

그는 북한대표팀 가운데 가장 국제대회 출전경험이 풍부하고 이번 대회 은메달을 포함해 2014년부터 총 3차례 은메달을 수상한 수학영재라고 합니다.

또 홍콩과 중국 언론에 따르면 그의 가정적 배경이 군 간부 자녀라는 말도 있습니다. 대회 폐막 후 갑자기 사라졌는데 홀로 행사장으로부터 20여㎞ 떨어진 홍콩섬 애드미럴티(金鐘)에 있는 한국총영사관을 찾아 망명신청 한 것을 보면 미리 준비하고 단단히 결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뿐이 아니고 북한군 총정치국에서 김정은의 자금 관리를 맡아보던 장성급 인사가 4천만달러를 가지고 중국에서 제3국으로 망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그의 가족 외에 북한외교관이 같이 움직이고 잇다네요.

지난해에는 대남공작업무를 총괄하는 정찰총국 간부가 서울에 망명한 것으로도 알려졌죠. 청와대까지도 이에 대해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유럽연합 성원국인 몰타에서 북한근로자들에 대한 비자를 완전히 중지했다는 보도에 이어 작년 여기 북한식당에서 근무하던 2명이 탈북 하였으며, 건설노동을 하던 사람도 1명 서울로 탈출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올해 10월부터 북한을 비자면제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군요. 국제사회가 북한의 도발적인 핵개발로 대북제재에 속속 동참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점점 외톨이가 되고 있다는 얘기죠.

현재까지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자수는 3만 명에 육박합니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생계 때문에 북․중 국경을 넘어 중국에서 살다 한국으로 왔다면 지금은 생계와 무관한 엘리트계층 탈북자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북한의 공포정치, 대북제재 강화로 아마도 체제이완과 이탈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죠. '잉크가 많다'. 공부를 많이 했다는 뜻입니다. 남한에서는 '가방끈이 길다'고 말합니다. 공부를 누구보다 더 길게, 더 많이 했다는 뜻이죠.

과학기술 중시정책을 표방하고, 주변이 어떻게 변하든 사정이 어떻게 나빠지든 자주, 선군, 사회주의 침로에는 한 치의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북한에서 수학영재, 장성급 인사, 정찰총국 간부 등 북한체제를 떠받들고 있어야 할 '잉크가 많은' 핵심 엘리트계층의 탈북이 줄을 잇고 있으니 지금의 체제가 병들어 있어도 단단히 병든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북한의 혁명가요에 있는 가사처럼 '갈라면 가라, 우리는 붉은기를 지키리라'가 현실화 돼 북중국경이 열리고, 갈 사람들을 다 가도록 그대로 방치한다면 과연 북한에 몇 명이나 남을 지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