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북한에서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많은 신조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농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농업전선은 사회주의 수호전의 제1제대, 제1선 참호'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일사천리를 '애국의 진군속도, 일행천리'라고 가공해 부르기도 합니다. '당이 번개를 치면 우뢰로 화답해 나서리', '조국이여, 우리에게 큰 짐을 맡겨 달라',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자', '만짐을 지고 난관을 헤쳐 나가는 기풍', '자력자강의 정신이 제일'이라는 표현들도 유별납니다. 또한 농산, 축산, 수산, 이렇게 3산을 강조하면서 과일풍년을 가리켜 '사회주의 과일향기', 축산의 성과를 빗대 '사회주의 바다향기'가 넘쳐난다고도 표현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를 어떻게 표현할까요? 비극적인 일이지만 이전에는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남편들이 많아 '과부동네'가 생겨났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바다풍년'을 '실종자 풍년'이라고 한다면서요. 고기잡이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함경남도 인민위원회와 도보안국이 집계한 도내 실종자 주민만 해도 150명에 달하고, 함경북도, 강원도까지 합치면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한 소식통은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낙지(오징어)철과 11-12월 도루묵철 사고는 대부분 작은 목선 승선 자들'이라고 하네요. 전문 선박공장에서 건조한 제대로 된 배가 아니고 개인들이 도끼목수로 제작한 자그마한 전마선들이기 때문에 침몰이 잦다고 합니다.
배급체계가 붕괴된 북한에서는 지역마다 특성에 맞게 시장벌이로 먹고 살고 있죠. 동해주민들은 마땅한 벌이가 없기 때문에 '물고기가 내 가족을 먹여 살린다'고 하면서 저저마다 자체로 만든 배와 어구들을 가지고 물고기 잡이에 나선다고 하죠.
당국에서는 이 같은 가족들의 애절한 심정을 모른척하면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오히려 인민보안서와 보위부에서는 실종자 가족을 불러 '진짜 배를 타고 나갔는가', '연락이 오면 즉시 보고하라'고 조사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더 한심한 것은 이렇게 절망에 빠진 가족들이 빛 독촉에 자살할까봐 '어떤 경우에도 자살하지 않겠다'는 '담보서(각서)'를 받아내기에 급급하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연말 두달 사이에 일본 연안에 표류된 어선이 14척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북한 어선이었습니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그 안에서 무려 31구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하나같이 길이 10미터 남짓의 낡은 목선들인데요, 어떤 목선은 '조선인민군'이란 표지판이 달린 것도 있고, 여기서는 어망과 먹다 남은 음식들도 발견됐습니다.
또 다른 목선에서는 옷가지와 '라진'이라고 쓰인 북한 담배도 발견되었고요. 어떤 일이든, 성과든 그에 따르는 비용이 발생하고, 또 대가가 따르지만 지금이 그 무슨 중세시대도 아니고 작은 목선으로 생계를 위해, 또 당의 수산정책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야 하니 어건 너무나도 무리한 선택이 아닐까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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