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단에 들어도 죽고 안들어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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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 중국 동북삼성지방의 한 언론은 북한의 피바다가극단이 중국 옌볜조선족 자치주에서 진행되는 겨울관광축제에 공연을 펼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의 3대 가극단 가운데 하나인 피바다 가극단은 지난시기 수차에 걸쳐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를 가지고 순회공연을 해 중국 관중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죠.

'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성황당' 등 5대혁명가극은 북한의 한 역사를 풍미한 '대작'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김정일의 문화예술론이 국내외적으로 각광을 받았고, 또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독창적이라고 하는 것이 이른바 종자 론이죠. 과거에는 작품의 주제, 사상성, 줄거리 등에 대해서만 논의되었다면, 김정일은 종자 론을 제기해 모든 작품에는 종자가 있어야 한다, 이 종자를 토대로 해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혁명연극 '한 자위단원의 운명'의 종자는 이거였죠. '자위단에 들어도 죽고 안 들어도 죽는다.' 즉, 일제통치하에서는 살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그 운명은 꼭 같다는 겁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그래서 총을 잡고 들고 일어나 일제 놈들과 싸워야 하고 조국광복을 이룩해야 만이 살 수 있다는 사상성, 결론으로 도달합니다. 이와 유사한 종자와 많은 재밌는 노래, 대사들은 유명세를 타고 청소년들, 주민들 속에 유행되었으며 좋은 유머, 패러디소재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북한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의 종자는 이런 거였죠. '위대한 영도자를 만나야만 민족의 미래가 있고, 조국광복도 있다.'

좀 비약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 결단을 했어도 조국광복은 요원했고, 모든 근원이 해결되지 않았으며, 결국은 '김일성장군의 등장과 영도에 의해서 나라가 해방됐고, 조국광복이 찾아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안중근의사가 이등박문을 쏜 헤이룽장 성 하얼빈기차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남한정부는 여기에 기념 표지 석을 설치하는 것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성사가 되지 않았었죠.

그런데 박근혜대통령의 지난 6월 중국방문 시 시진핑 주석에게 요청해 그 후속 조치로 표지석보다 한 단계 높은 기념관으로 건립돼 세상에 탄생했습니다.

특히 중국이 안중근 기념관을 만든 자리는 1930년대 일제가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던 지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합니다.

중국 측은 기념관을 건립하면서 전시내용 등에 대해 한국정부와 사전협의했으나, 개관 일정 등은 철저히 보안에 부쳤고, 북한에도 사전에 알리지 않을 만큼 기밀유지에 신경을 썼다고 하네요. 안중근열사가 황해도 해주부출신이어서 북한이 당연히 신경 쓰겠죠?

일본정부는 이에 대해 항의했습니다. 안중근열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면서 말이죠. '일방적인 평가를 토대로 한국, 중국이 연대해 국제적인 움직임을 전개하는 것은 지역의 평화와 협력관계구축에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지극히 유감'이라고도 했습니다.

북한의 유명작품과 종자 론을 통해 본 역사인식!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역사는 꼭 되풀이 된다고 하죠.

지금 현재 북한은 김정일 종자 론에서 제기했던 '민족의 영웅, 위대한 지도자를 모시고'있는 걸가요? 그래서 북한의 현재와 미래가 밝고 창창한 걸가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