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저, 소년단원 동무, 김일성동상의 무게가 얼마입니까?' '우리 조선인민의 심장의 무게를 합친 것과 같습니다.'
이는 평양을 방문한 한 외국인과 길거리를 가던 학생과의 우연한 대화내용입니다. 그 학생은 이 말 한마디로 일약 스타가 됐고 온갖 강연, 학습, 선전 선동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저도 사실 이 말에 그때는 가슴이 뭉클했죠.
대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린 학생의 재치에 더 감탄했던 것 같습니다. 북한선수 정성옥이 국제 마라톤경기에서 1등을 하고 이런 일도 있었죠. 1등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장군님(김정일)을 그리며 달렸다'고 답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그는 일약 국민영웅이 됐고 벤츠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고급 아파트, 영웅칭호 등 받을 수 있는 것은 다 받았습니다. 근데 제 보기에는 정성옥이보다 어린 학생의 상상력이 더 뛰어난 것 같습니다.
여기 남한에 오니까 이런 말도 해주더군요. 언젠가 회담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북한대표단에게 남측이 시내구경을 시켰다고 합니다. 도로에 차가 많고 번창한 것이 배 아팠는지 한 열성당원이 이렇게 말을 던졌습니다.
'여기 서울에 전국의 차를 다 모아 놓느라 수고 많았소.' 그리고는 내심 '내가 한 꼴 먹였지. 평양에 가서 칭찬받아야지,' 이런 생각에 흡족한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근데 남한 안내원의 재치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차보다는 저기 저 아파트들을 다 모아 놓느라 혼쭐이 났어요.'
근데 위의 이 대화나 말들은 지금 김정일 사망 후 북한매체가 온통 떠들고 있는 신격화보다는 한참 문명해 보입니다.
듣자니까 김정일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19일을 전후해 북한 전 지역에서는 기이한 자연 현상들이 잇따라 관측됐다고 합니다.
관측사상 처음으로 백두산 천지에서는 얼음이 천지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는가 하면, 정일봉 상공에서는 세차게 눈보라 치던 날씨가 오전부터 갑자기 멎고 온통 붉은색의 신비한 노을이 30분 동안 김정일의 친필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비췄다나요.
새들의 재주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함흥 동흥산 언덕에 있는 김일성동상 주위에는 백학이 날아와 위를 세 번 돌고 나무위에 앉더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오후 10시께 평양 방향으로 날아갔다고 합니다.
이 자연의 신비에는 올빼미며, 접동새, 독수리에, 산비둘기까지 조류가 총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름 없는 새 까지 도요. 대부분은 조의식장을 찾아와 슬피 울든지, 아니면 상공에 나타나 몇 바퀴 돌다가 평양방면으로 날아가는 식입니다.
최근 제 사무실 창문에 까치가 날아와 몇 번 두드리고 달아났는데 혹시 이 새도 백두산천지가 보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날아간 방향도 평양방향이었습니다.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억울한 것은 까치입니다.
언젠가 평양에서는 이런 포치(지시)도 있었습니다. '까치는 해로운 새이다. 농작물을 해치고 유익한 벌레를 많이 잡아먹고.' 급기야 까치사냥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부정적 이미지의 주인공으로 아동영화에도 등장했죠.
손님을 제일 먼저 알려주고, 소식도 전해주는 통신원 까치. 고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갈림길에 서있는 나무와 까치둥지인데, 길조로 알았던 이 까치가 어느 날 갑자기 흉조로 낙인 찍혀 청산대상이 된 거죠.
근데 김정일 신격화 때는 사정이 또 달라집니다. 흰 까치, 황색까치, 보통까치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원되어 장군님 사망에 슬픔을 표시해야죠.
김 씨 왕조에서는 사람살기만 고달픈 것이 아니라 까치도 참 힘듭니다.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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