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강도는 날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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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얼마 있지 않아 김정일 생일 75돌인데 이때쯤이면 전국적으로 '김정일 고향 밀영'이 있는 량강도 백두산지구 답사를 많이 떠납니다.

김일성이 어린 시절 '조국을 광복하지 않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며 떠났다는 '광복의 천리길'을 따라 가는 행군 대에 이어, 지금은 백두혈통을 이었다는 김정일 생가와 정일봉을 찾으러 군인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역을 치르면서 행군 길을 걷고 있습니다.

량강도와 백두산은 북한에서 혁명전적지의 대보고로 불리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에 그 무슨 전투장소, 구호나무, 밀영집, 사적지들이 꾸려져 있습니다. 량강도 전체가 이 전적지, 사적지관리를 하면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가장 본격적으로 건설이 진행된 것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되어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를 본격화할 때입니다. 1970년대, 80년대에 절정에 달해 삼지연, 백두산천지, 보천보, 베개봉,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이라는 커다란 글자를 새긴 향도봉, 소백수, 리명수폭포 등 모든 곳이 성역화 되었습니다.

저도 백두산 답사를 여러 번 가보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변화무쌍한 백두산천지 날씨와 수려했던 리명수폭포였습니다.

리명수폭포는 부석층 밑으로 숨어 흐르는 물이 벼랑 중턱에서 떨어지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지하수 폭포인데요, 천지에서 녹은 물이 수십킬로미터 땅속을 흘러 나와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수증기를 뿜어 폭포 주변 나무들에 하얀 서리꽃을 피우는 것이 장관입니다. 아래에는 500년 묵은 채양버들이 있고, 주변 푸른 이깔나무 숲도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그리고 또 놀랐던 것은 곳곳에 우등불자리, 구호나무, 밀영 등을 보존해 놓고 여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유리관을 씌운다, 사적관을 만든다, 비석을 세운다, 조각을 만든다 하면서 대 노천 혁명박물관을 조성한 것입니다. 깍은 돌과 쓰인 화강석만 해도 엄청날 거고 당시 충성자금은 대부분 여기에 쏟아 부은 것 같습니다.

김씨일가의 독재통치에 활용되는 백두산 사랑은 3대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백두산 칼바람정신', '백두혈통'이 새로 생기거나 강조되더니 삼지연을 포함해 더 많은 부분을 개발, 확장하고 있는 거죠.

특히 삼지연군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고 있는데요, 도로 정비, 목욕탕, 합숙, 관리소, 학교와 병원, 텔레비전 중개소 등 공공건물, 백두산 모양의 사적지 종합강의장, `백두관`, 감자음식 전문식당, 종합 서비스시설인 `은덕원` 등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이 혁명전통계승을 위해 이렇게 공을 들이고 있는 백두산지구, 량강도 사람들의 실제 삶, 정신세계는 어떨까요? 오래전부터 량강도는 북한주민들에게 '날강도'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너무도 자본주의화되고,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기도 잘 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사적지로 도배를 해도 국가가 주민들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면 량강도는 더더욱 날강도로 변하지 않을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