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밥은 먹고 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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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민족최대의 명절인 음력설입니다. 서울에서 설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방문과 설 예배입니다. 이를 위해 민족대이동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움직이죠. 며칠사이 수천만 명이 지방으로 내려가고 또 서울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자가용차로 움직이고 있고 일부만 고속철도, 고속버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평소 부산까지 4시간 좀 더 걸리는데 명절에 차가 막힐 때는 7시간, 8시간 가기가 일쑤죠. 그래도 고향을 찾는 발걸음이라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모두들 찾아갑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우리 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서울에서 불리는 가장 대표적인 설 노래입니다. 1년에 한번쯤은 꼭 들어보는 노래인데요, 이 노래가 울려 퍼지면 설날분위기를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부모님들을 비롯해 손님을 맞는 가족들에서는 설음식 차리느라 분주합니다. 물론 며느리, 딸들과 같이 하기도 하지만 이는 귀경, 귀성길에 이어 또 하나의 전쟁을 방불케 하죠.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명절이 지나면 여성들의 병원출입이 평소보다 훨씬 늘어나고, 심지어 이혼율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가족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상시 곪고 곪았던 가족 간의 관계가 이때 터지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문젯거리들도 있지만 추석과 음력설만큼은 우리 민족이 가장 크게 쇄고 기다리는 최대의 민속명절임이 틀림없죠.

세뱃돈은 사정에 따라 각이합니다. 어린 애기들한테는 5천원, 학생들한테는 1만원, 어른들끼리는 5만원에서 10만원, 자기 능력껏 성의를 표시합니다.

북한에서도 큰 흐름은 크게 다를 바 없죠. 가족들을 방문하고, 설 인사를 드리고, 적지만 세뱃돈을 나누고,,, 이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만수대동상을 포함해 김부자에게 먼저 첫 인사를 해야 하는 것, 그리고 신정에는 신년사를 암송해야 하는 것 일겁니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때는 이런 말도 유행했었죠. 가족이나 친지가 집에 오면 인사가 '물론 밥은 먹고 왔겠죠?'였죠. 실시로 누가 이렇게 인사말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어려운 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씁쓸한 표현이었습니다.

지금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북한당국은 이번 음력설을 장거리로켓발사시험으로 맞이했습니다. 지구위성을 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정권안보만을 위한 국고의 탕진,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 세태가 계속될 경우 북한체제가 과연 얼마나 더 오래 버틸 가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