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거리는 또 하나의 '비둘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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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는 4월 15일은 김정은 정권이 중요시하는 김일성 생일로, 이를 앞두고 북한 전역에서 金氏 일가 우상화 행사 준비 작업이 한창입니다. 대다수 북한 주민들이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이에 상관없이 우상화만큼은 북한이 세계 챔피언감이라고 할 정도로 북한 당국이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회 있을 때마다 김정은이 우상화에 주력 하는 것은 주민들에 대한 세뇌가 목적입니다. 즉, 통치자로서 정통성이 부족한 자신을 신격화하여 주민들이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들기 위한 술책이지요.

올해 김일성 생일은 북한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김정은이 평양에 들어설 대형 주택단지인 여명거리 건설을 무조건 4.15까지 끝마치라고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여명거리 건설 때문에 주민들이 아주 죽을 맛입니다. 주민들은 건설작업에 필요한 각종 자재를 마련해 바치고, 작업에 동원된 군인들 도시락까지 준비해야 합니다.

비록 집에서는 굶거나 멀건 죽을 먹으면서도, 군인들을 위한 도시락에는 여러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쌀밥에 고기반찬까지 얹혀야 뒤탈이 없죠. 그리고 주민들은 매일같이 건설현장 주변 정리 등을 위해 노력동원에도 나가야 합니다.

더욱이 공사장 인근에 임시 거주하고 있는 군인들이 밤만 되면 '마흐노 도당'•'공산군'으로 돌변, 약탈과 부녀자 희롱 등을 일삼아 주민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주민들의 고통으로 건설된 여명거리가 정말로 주민들을 위한 것일까요? 여명거리가 완공되면 우선 核•미사일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에게 아파트를 일부 배정해 줄 겁니다. 그리고 '한랭전선이 오면 그것도 간부들이 먹겠지'라는 말처럼, 나머지는 대부분 당 간부들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결국 고생은 주민들이 하고, 정작 혜택은 당 간부들이 다 챙겨갈 것입니다.

한편 여명거리에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됩니다. 사실 북한에서 초고층 아파트는 체제 선전용으로 유용할지 몰라도, 실제로 거주하기에는 아주 고역입니다. 겨울이 되면 전기가 모자라 엘리베이터가 수시로 멈추기 때문에 수십 층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또한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길어 올라가야만 하니, 여명거리 아파트 고층부에는 빈집이 속출하게 되고 이는 꽃제비들의 차지가 되겠지요. 결국 여명거리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고 말 것입니다.

평양에는 소위 '평양속도'로 어설프게 건설된 집들이 많습니다. 특히 소형 평수로 지은 집들은 '비둘기장' 또는 '하모니카 아파트'라고 하죠.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가 사는 모양을 빗댄 표현입니다.

김정은의 核 고집과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對北제재로 가중된 북한의 경제난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전기•식수 공급도 여전히 어려운 상태에서 김정은 '치적 쌓기'를 위해 지어진, 겉으로만 화려해 보이는 여명거리는 결국 또 하나의 '비둘기장'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모양이 가로가 아니라 위로 길쭉한 세로라는 점뿐이겠죠.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