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외화벌이는 교화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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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충성의 외화벌이, 당 자금 확보 그리고 지금은 '혁명자금'마련이라는 요란한 구호 속에 계속되고 있는 북한에서의 외화사냥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수한 애환을 남기고 있습니다.

누구는 거간으로 몇 만 달러 횡재도 해보고, 누구는 해외파견, 외국출장으로 돈벼락도 맞아보고, 누구는 난생처음 만져보는 달러라 식별을 잘 못해 슈퍼노트로 사기도 당해보고, 누구는 입당을 하려고 꼬깃꼬깃 모아두었던 재산을 통 털어 당 비서에게도 바쳐보고.

간부들 속에서, 그것도 북한체제에 충직한 충성분자들 속에서 진리로 숭배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외화벌이는 교화벌이다'입니다. 왜냐면 달러를 만지고 그의 유혹에 빠졌던 사람들 대부분이 불행을 맞았으니까요.

한때 북한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향만루 외화상점사건.' 한 여인의 사기와 치맛바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잘리고 떨어져 나간 일화입니다. 그의 중구역 동성동 집을 털어보니 외화상점을 하나 차릴 정도로 새 물건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환락과 욕구의 절정을 경험해서일가요, 아니면 '가늘고 길게 보다 짧고 굵게' 라는 자기의 인생철학을 달성해서일까요, 담 있는 그녀는 조사관들에게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수령절대주의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담찬 여성의 진술입니다. 그는 공개총살로 형장의 이슬이 되었습니다. 가족들도 모두 지방으로 추방됐고요.

그리고 하나 또 있습니다. 평양 시 어느 한 구역 청년동맹 간부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김정일 자식으로 가장하고 대외보험총국에 와 2만달러의 새 지폐를 사기 쳐 가져갔다가 붙잡혀 총살당한 사건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중앙당 재정경리부 간부를 했었기 때문에 당 내부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죠. 특히 달러의 흐름을 파악했던 겁니다. 그랬기에 김정일 집무실을 일컫는 3층을 빗대고 나름대로 알만큼은 다 안다는 보험총국의 당 비서를 포함한 간부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대접까지 받으면서 돈을 인출해 유유히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장성택이 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했지요. 공안기관 모두를 통설하고 있는지라 그리고 '장군님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라 전국에 수사포치하고 샅샅이 뒤졌습니다. 몽타주사진도 물론 돌렸고요.

근데 신기한 것은 중앙당 사택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고 그 집 현관에 사진이 붙어있었는데도 신고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한 동안 있다 잡혔는데요, 그는 돈을 사기 치는 데는 귀재였지만 쓰는 데는 천치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도 참지 못하고 돈을 좀 들고 나가 외화상점에서 신발도 샀고 장마당에서 북한원화로도 바꾸었습니다. 결국은 달러지폐의 연 번호를 돌렸기 때문에 장마당 환치기 장사꾼들의 신고에 의해 덜미가 붙잡혔습니다. 마침 인출된 돈이 새 지폐라 은행에서 연 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하도 무서워 애인하고 평양 시 주변의 어느 곳에 돈을 묻어두었다가 다시 꺼내 태워버렸다고 했습니다. 이를 확인하느라 보위부 요원들은 1달러지폐를 태워보기까지 했죠. 그 이상은 아까우니까요.

최근에는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류경이 99발의 총탄을 맏고 자기 동료들 앞에서 능지처참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달러를 착복했다는 얘기도 있고 김정은이 군기를 잡느라 공포조성의 일환으로 저질렀다는 얘기도 있고요.

김정일이도 권력을 승계할 때 자기 말을 잘 안 듣는다고 김병하를 제낀 적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십중팔구는 외화벌이에서도 탈이 났을 겁니다. 달러를 많이 먹었겠죠.

자, 이쯤 되면 북한에서 유행하던 말을 인제는 바꿀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외화벌이는 교화벌이다'가 아니라 '외화벌이는 조화벌이다'라고요. 장례식 때 조화를 많이 쓰니까요. 그런데 외화를 제일 많이 먹는 김씨일가는 왜 다 멀쩡하죠?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