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좀 있으면 삼복더위입니다. 이 무더운 여름철에 100년 만에 처음 되는 왕가뭄까지 덮쳤으니 농사피해도 크리라고 봅니다.
또 삼복더위 속에서 당 창건 70돌을 기념하기 위해 열병식에 동원돼 '충성의 구슬땀'을 흘리느라 대학생들도 얼마나 수고가 많을까 걱정도 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열병식에서 편하려면 한 개 종대에 15명 정도씩 특별히 두는 '보장 조'에 속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겠죠.
그러나 보장 조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병이나 건강을 구실 대는 간부 자녀들, 그리고 종대 간부들과 종대를 위해서 후방사업을 해 줄 능력이 있는 외화벌이나 무역회사들의 중간급 간부 자녀들이 해당됩니다.
실제 이들은 종대 일반성원들을 위해서는 크게 하는 것이 없고 보통 훈련지도교원들이나 종대장 포함, 간부들의 술상이나 차려주고 잔심부름을 하는 학생들이죠.
저도 1985년에 있은 '조국해방 40돌 열병식'에 직접 참여를 했는데요, 당시 김일성종합대학 1학년생으로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체험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때는 사실 경제상황도 지금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훈련생들에게는 특별히 식사공급을 해 주었기 때문에 보장 조 성원으로 뽑히거나 참여하는 데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군 생활보다도 몇 배 어려운 열병식 준비에 열심히 참여해 자신도 정신 육체적으로 더 잘 달련하고, 더욱이 '장군님을 모시고' 진행되는 열병식에 어떻게 하든 참가해 1호 행사, 1호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꼭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았죠.
실제 우리는 열병식에 참가해 기념촬영도 했고, 당시 착용했던 새 군복, 신발도 모두 무상으로 선물 받았으며, 꼭 '공화국 영웅메달'처럼 생긴 '조국해방 40돌 기념메달'도 받았습니다. 국기훈장 2급보다 반급 높은 수훈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경제, 식량사정이 너무 안 좋으니 열병식 참가나 1호 행사 참가는 뒷전이고, 그냥 편하게 살려는 경향이 더 강한 모양입니다. 모두가 보장 조에 들어갈려 한다니 말이죠.
훈련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발을 콘크리트 바닥에 하도 굴러 신장이 울려 피오줌을 계속 싸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잔혹했으면 몇 달 동안이나 이런 고생을 강요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순간 김일성광장 사열대를 지나가기 위해서 말이죠.
처음에는 땀에 소금기가 배나와 훈련복이 허옇게 되군 했죠. 하루라도 빨지 않고 지나면 소금기가 굳어져 옷이 마대처럼 뻣뻣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몇 달 지나니까 습관이 됐는지 아니면 몸이 자기를 자동적으로 보호하려고 하는지 소금기가 얼마 나오지도 않더라고요.
김 부자 한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천수만이 피땀을 흘려야 하는 사회, 기계처럼 마모되면서 살아야 하는 북한사회가 과연 언제면 인민대중이 주인이 된 사회가 될까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