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단련의 용광로

정홍원 국무총리가 4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앞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등과 악수하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4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앞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등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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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 북한군 총참모장 황병서, 최룡해 근로단체 비서 및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양건 대남담당비서 3인방이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을 깜짝 방문해 서울에서는 그 진의도를 놓고 뜨거운 논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기결과에 대해 잠간 소개해 드리면 45억 아시아인구가 대결한 이번 17차 경기에서는 중국이 금메달 151개로 종합 1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남한이 금 79개, 은 71개 동 84개로 5회 대회 연속 종합 2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뒤로 일본 금 47개, 카자흐스탄 28개, 이란 21개, 태국12개로 3, 4, 5, 6위를 했고 북한은 금 11개로 종합 7위를 했습니다.

더욱이 체육의 상징인 축구에서 북한이 여자 우승, 남자 준우승, 남한이 남자 우승, 여자 3위를 해 큰 여운을 남겼습니다. 북한에서는 사실 다른 것은 다 져도 축구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이런 기준이라면 남북이 이번 게임을 완전히 제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경기결과에 만족해서일가요, 아니면 미리 각본을 짜고 있었던 걸가요, 북한은 갑자기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포함해 북한권력 핵심실세 3명을 폐막식에 보내겠다고 하루 전에 통보해 왔고 서해항공로로 와 12시간동안의 일정을 소화하고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까지 남북관계 역사상 이렇게 북한 핵심실세들이 3명씩이나 한꺼번에 몰려온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이유에 대해서 많은 화제를 낳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요즘 김정은이 30일 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김정은이 감금됐다, 김정은이 사고가 나 무의식상태이다'라는 소문이 돌고 있으며 이런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들 모두가 나타났다 에서부터 별의별 추측이 다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과거에는 매우 꼿꼿하고 메말랐던 북한관료들이 이번에는 옆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하고 화기애애한 인상을 풍겨 많은 이들의 환심도 자아냈습니다.

한 때 격 논란으로 남한 통일부장관과 회담을 한다, 만다 했던 김양건비서는 수행원처럼 황병서를 대동하면서 보좌했고, 황병서총정치국장은 말이 차수 왕별을 달았지 권위주의적인 냄새는 전혀 풍기지 않고 무척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총리와 면담할 때는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의자에 기대지 않고 정숙히 대화도 나누었고요.

그리고 선수촌에서는 '북한'이라는 호칭에 강력하게 반발했었지만, 폐막식에서 대한민국 애국가가 연주되자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비롯해 간부들 3명이 모두 기립해 예의를 갖추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두 비서의 행동을 보면서 평양에 있을 때 듣던 말이 문득 생각나더군요. '조직생활은 사상단련의 용광로이다.' 그야말로 평생을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은 조직생활에 매달려 훈련되고 세뇌되다나니 이러한 행동들, 자세들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을 보좌해 근거리에서 일하던 중앙당 간부들은 훨씬 더하죠. 제 주의 사람들은 중앙당에서 일하는 것을 '사상단련, 수련의 대학'을 하나 더 나오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번에 북한 고위관료들이 보여주었던 겸손하고 소박하고 평화로운 자세와 행동들이 남북관계 전반에 전파돼 모처럼 마련된 훈풍을 타고 평화통일을 향한 양측의 노력에 크게 기여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