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도 도덕’

0:00 / 0:00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얼마 전 조선중앙통신은 창립 70주년을 맞은 만경대혁명학원에 김정은이 직접 찾아가 축하해 주었다고 밝혔습니다.

혁명학원에 세워진 김일성·김정일 동상도 참배했고 핵심골간을 많이 키워내고 있다고 치하도 해주었습니다. 교직원, 학생들과 기념사진도 찍었고 새로 건설된 혁명사적관과 강의실, 종합체육관, 수영장도 둘러봤으며 여동생 김여정도 동행시켰죠.

김일성의 고향집 가까운 곳에 소재한 이 혁명학원은 북한의 당·정·군 핵심 골간을 키워내는 ‘혁명의 원종장’입니다.

1947년 10월에 설립돼 소위 김일성과 항일빨치산을 같이 한 혁명가 유자녀들, 고아들을 찾아내 먼저 간 동지들의 자식들을 책임져 주고, 이들을 혁명에 충성하는 충신들로 키워내는데 사명을 두었습니다.

남자들은 만경대혁명학원에서 키워내고, 여학생들은 남포학원, 지금은 만경대구역으로 옮긴 강반석혁명학원에서 키워내고 있습니다. 연형묵, 오극렬, 처형된 장성택 등 북한의 유명간부, 인사들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죠.

1978년경인가 고아원천이 고갈되자 김정일은 당, 국가 주요간부들더러 자기 자녀들을 혁명학원에 보내 졸업 후 군에서 복무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장관급 이상 간부 자녀들이 모두 혁명학원에 입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죠.

김일성의 4촌동생 김선주는 만경대 고향집을 자기가 지킨다고 하면서 혁명학원 정치부장으로 오랫동안 재직했습니다.

학생들은 나이에 따라 초등 및 중고등 과정을 모두 한 학교에서 거치며 전 기간 특이하게 제작한 장교형식 군복을 입고 기숙사에서 생활하죠. 아무리 어려운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이들에 대한 영양보급, 공급은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혁명학원은 특별대우를 받아 그렇다고 하지만 다른 교육시스템은 현재 완전히 뒤죽박죽입니다. ‘뇌물도 도덕’이라는 미명하에 대학입학부터 교육과정, 사교육, 졸업, 배치에 이르기까지 온갖 비리가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선생들은 입학시험에 대한 문제집, 답안지까지 만들어 해마다 수험생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사교육을 시키고 입학시험 때 부정행위를 해 점수를 올려 대학입학을 책임지는 식이죠.

대학에서 입학시험을 치를 때는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시험지에 약속한 표시를 해 채점 시 점수를 올려주는 방법, 감독관에게 답안을 만들어 전달하는 방법 등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시험이 시작되면 창밖으로 문제를 적은 쪽지들이 휙휙 날아다닙니다. 때론 3-4층 건물 창문에 매달려 답을 전달하기도 하죠.

교육과정에 시험을 칠 때도 선생들이 식사대접, 술대접 받는 것은 지금 보통입니다. 점수를 올리려면 집단적으로 학급에서 돈을 모아 몇 만원씩 전달하기도 하죠.

이것은 선생들의 부도덕 때문만이 아닙니다. 국가에서 생계를 책임져 주지 않으니 벌어지는 현상이죠.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학교선생들이 굶어 출근을 하지 못해 학생들이 각자 쌀 한 줌씩 모아 갖다 주기도 했었죠.

그리고 사회에 인맥이나 아는 사람이 없는 선생들은 학급 학생명단에 의존해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자녀들 군 복무하는 것까지도 의존해야 합니다.

교육자들을 금방석에 앉히고 싶다는 공언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뿐이 되는 것은 당연하겠죠.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