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에서 몇 안 되는 빨치산 원로인 이을설원수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공동명의로 되는 부고를 발표하고 그의 장을 국장으로 하기로 하였으며, 김정은을 위원장으로 하는 170명으로 된 장의명단도 발표하였습니다.
지난 9일 그를 조문한 김정은은 ‘우리 수령님의 가장 충직한 혁명 전사였으며,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 전우였던 리을설 원수동지를 잃은 것은 우리 당과 군대, 인민에게 있어서 커다란 손실로 된다’고 했죠.
또한 모든 군부대에 조기(弔旗)를 게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전군의 모든 장병들이 조선인민군 원수 리을설 동지의 서거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의로 이 같은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북한매체는 그의 생애와 공로에 대해 ‘1937년 7월 조선인민 혁명군에 입대한 후 사령부 전령병으로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 전술적 방침을 받들고 군사정치활동을 정력적으로 벌여 항일무장대오를 강화하고 일제침략자들을 격멸 소탕하는 데 공헌했다’고도 했습니다.
이렇듯 그는 북한 ‘3대 수령들 모두와 인연을 맺고 그들에게 충직했던 혁명전사, 혁명전우, 혁명선배’였습니다.
호위총국장을 맡기 전에 그는 몇 년 동안 수도방어사령부 사령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매일아침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지휘부에 출근했죠.
아침 일찍 얘기를 업고 숨이 넘어가도록 출근길에 뛰어다니는 아줌마들을 보고는 부관에게 그 사연을 알아오도록 지시하기도 했죠. 지휘부 세탁소에 지각할까 봐 그런다는 보고를 받고는 출근시간을 늦추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리고 부대지휘관들과 자녀들의 시내 출퇴근을 도와주기위해 출퇴근버스도 운영하게 했는데요, 화려한 일본산 닛산 버스 2대를 들여와 양반들처럼 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정말 ‘인민적 풍모’를 갖춘 지휘관이었죠.
언젠가 사령부 내 한 사병이 부림소를 맨 주먹으로 몇 마리 잡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모두 때려잡아 먹었죠.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령부 검찰소에서 사건을 처리하고 결국 사형에 처하게 되었죠. 왜냐면 북한에서 부림소는 귀하기 때문에 인력처럼 취급합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고 몇 마리를 죽였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다뤘죠.
사형이 집행되기 전 사령관이 그 사병을 불렀습니다. 자기는 빨치산 때부터 지금까지 소를 몇 마리 때려눕힌 사건은 처음 본다는 이유에서였죠.
북한의 어느 한 영화에는 이런 유명한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과의 사업이란 백사람이면 백사람 다 웃는 낯으로 대해야지, 그중에서 한사람이라도 얼굴을 붉히면 이건 벌써 실패한 것입니다.’ 사람과의 사업이 무엇인가라는 문답식학습경연 과정의 내용입니다.
물론 이것은 정답은 아니고 유머로 작가가 처리한 내용이지만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을설원수는 정말 사람과의 사업의 달인이었죠. 그가 처음부터 꿈꾸고 원했던 사회와 체제가 지금의 현실이었을까 라는 의문은 들지만 말이죠.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