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이상 모이면 불법

0:00 / 0:00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요즘 서울에서는 전 세계인을 놀라게 하는 초불시위가 뜨겁게 광화문 광장을 메우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사상최대규모인 232만 명이 전국적으로 모여 6번째 집회를 가졌는데요, 시민들의 민주의식과 공동체정신의 발현으로 아직까지 단 한 건의 경찰연행,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회에 자주 등장하던 시위꾼들의 쇠파이프와 경찰의 물대포도 완전히 사라졌고요, 오히려 주민들이 경찰을 수고한다고 격려해주고, 경찰차에 붙은 스티커들을 자발적으로 떼어내는 아름다운 소행들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일부 노점상들, 대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김밥이나 따끈한 음료수, 초불, 기타용품들을 무료로 나눠주는가 하면 거리에 던져진 오물들을 깨끗하게 줍고 청소하는 모습들도 보였습니다.

북한에서도 남한을 '썩고 병든 자본주의'라고 비하하면서 요즘 초불시위와 관련해 온갖 기사와 매체를 통해 선전선동에 열을 올려 시위가 왜 일어났는지, 지금 남한 정치지형이 어떻게 요동치고 있는지 잘 아실 테지만 그야말로 획일적인 유일사상체제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살다 온 저로서는 오히려 탄복하고 감탄하는 일들만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죠. '둘 이상 모이면 불법이다.' 또는 '비상시국에 생일파티까지?' 모두 일제통치시대와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나오는 대사들입니다. 당시대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반영한 것들이죠.

그러나 주민들은 이를 일상생활에 활용해 저들이 처한 현실을 비꼬거나 야유하는 유머로 바꿔서 씁니다. 일종의 감시와 통제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죠.

그리고 현실 또한 그렇습니다. 북한에서는 2인 이상이 함께 하는 사적조적은 절대적으로 불법입니다. 심지어 도둑질도 혼자 해야지, 둘 이상 공모해서 하면 색안경을 끼고 더 엄중히 처벌합니다.

더욱이 2명이상이 김일성광장에 모여 김정은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초불을 들고 시위한다는 것은 꿈속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백만 이상이 모이더라도 북한독재정권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두 기관총으로 사살할 겁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죠. 현재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모든 언론사들이 앞 다퉈 시위를 보도하고, 대통령을 비판하고, 각계 원로, 학자, 가수, 배우, 시민, 학생, 주부, 농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하루 24시간 방송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북한당국이나 언론은 지금 이 현실을 보도하면서 어떤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을까요?

혹시 북한주민들이나 청년학생들이 남한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동경하지나 않을까.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국민들이 나서 시위로 자기의 진짜 주권을 표현하는 것을 과연 북한주민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북한에도 조만간 남한의 시위문화가 들어와 작은 초불이 횃불이 되고, 등불이 되지는 않을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을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