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무슨 장기 쪽이요?’

북한 모란봉악단이 지난 12일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중국 베이징(北京)의 호텔을 나서고 있다. 이들은 이날 베이징 국가대극원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갑자기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모란봉악단이 지난 12일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중국 베이징(北京)의 호텔을 나서고 있다. 이들은 이날 베이징 국가대극원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갑자기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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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정은의 친위악단인 모란봉악단이 중국을 방문해 친선공연을 펼치려다 공연시작 3시간 전에 돌연 취소하고 평양으로 복귀해 언론이 시끄럽습니다.

평양방송, 언론도 이번 방문을 앞두고 모란봉악단 띄우기에 온갖 극찬을 아끼지 않더니 일시적으로 언급이 싹 사라졌다고 합니다.

철수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난무하지만 가장 최근 파악된 바로는 김정은이 평천혁명사적지 방문 시 언급한 '수소폭탄 보유'발언에 중국 측이 원래 예정됐던 관람인사의 격을 정치국원급에서 부부장급으로 대폭 낮춘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합니다.

중국정부 측 인사의 발언이라고 하니까 가장 신뢰할만한 정보인 것 같습니다. 악단이 중국을 향해서 출발하는 날 북한 중앙방송은 전날 김정은의 평천혁명사적지 방문소식을 전하면서 수소폭탄 발언을 공개했죠.

이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현재 한반도의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하며 취약하다고 판단한다,' '관련 당사국이 정세 완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길 희망한다'며 이 수소폭탄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죠.

또 항의 표시로 이번 공연관람 인사들의 격도 합의한 것 보다 3-4단계나 낮췄다고 하네요. 두 나라사이 외교가 걸린 문제를 가지고 취소 결정할 사람은 북한에 김정은밖에 없는데 아마도 이에 대한 보고를 받고 화가나 철수명령을 내린 것 같습니다.

홍콩의 한 매체는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에 '중국이 북한에 대해 석유지원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음을 전달하고 중국군 신속대응 부대 2,000명을 국경에 긴급 증파했다'고 하면서 이 결정에 김정은이 격노해 공연을 취소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설은 김정은 옛 애인으로 숙청설까지 돌았던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이 언론에 너무 부각된 것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최고 존엄 훼손에 대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북한으로서는 일리가 있지만, 일방적인 이 이유보다는 공연취소가 중국과의 외교문제가 걸린 사안이기 때문에 중국하고 연계가 있는 문제 때문에 이번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설은 모란봉악단 단원 2명이 국가대극원 공연을 앞두고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인데요, 즉 망명해 중국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악단이 10일에 도착해서 12일 첫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 2박 3일 사이에 도망친 사건이 실제 일어났다면 중국 영내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중국 공안이 이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을 테죠. 그래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봐야겠습니다.

어찌됐든 외국출장과 외국공연에 잠시라도 마음이 설렜을 단원들의 어깨가 축 쳐져 짐도 싸지도 못하고 비행장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죠. '내 몸이 무슨 장기 쪽이요?' 그런데 모든 노래에도 사상이 있어야 하고, 악단에도 수령의 정치가 구현돼야 하니 장기 쪽은 좀 약과 같네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