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개'교부와 보신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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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모두다 모내기 전투에로!' 어느덧 지루한 겨울이 지나고 한해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모내기하면 척 떠오르는 것은 '후방사업'입니다. 먹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북한에서는 언제부턴가 '후방사업은 곧 정치사업이다'라는 말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도 먹을 것이 부족하다보니 말로만 충성을 떠들어야 필요 없고 배를 불려주는 것이 곧 당에 충성하게 하는 정치사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후방사업의 수준은 기관마다, 회사마다 다룹니다. 달러를 좀 벌고 힘있는 기관들은 푸짐하게 밥상을 차려주는 반면 그렇지 못한 단위들은 손가락만 빨며 모내기를 해야 합니다.

저도 모내기철에 후방책임자를 여러 번 했습니다만 혁명자금을 많이 벌어 해마다 김정일에게 2,000만 달러의 빳빳한 현금을 생일선물로 바치는 대외보험총국의 모내기 상황을 재현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총국에서는 공기 좋고 교통이 편한 곳에 지원농장을 선정합니다. 돈을 푼푼히 쓰기 때문에 농장들은 저저마다 대외보험총국을 후원자로 받으려고 다툽니다.

농장이 선정되면 총국간부들이 직접 나서 지원해줄 디젤유 몇 톤, 비료 몇 톤, 비닐박막 몇 미터, 이렇게 농장과 합의합니다. 그리고는 중국에 있는 대표부나 운영하는 선박을 동원해 약속된 물자들을 보장합니다.

농장에서는 이에 보답하여 일단 제일 편한 남새반이나 과수반에 총국직원들을 받습니다. 그리고 주마다 각 작업반들에서 개 한 마리씩 보장합니다.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보신탕으로 너무 즐겨 먹습니다. '삼복더위에는 단고기(보신탕) 국물이 발잔등에 떨어져도 보약이 된다'고 하죠.

다음은 각 부서에서 1차, 2차, 3차 등 여러 차례에 나갈 동원인원들을 선발합니다. 보통 돈이 좀 많고 해외대표부에 나가 살던 직원들을 2-3명씩 섞습니다. 그들은 20-30달러 정도 돈을 내고 안 나가는 수도 있지만 나가면 평소 집에서보다 잘 먹으니 몸보신 차원에서 일부로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방책임자를 선정하고 '작식 대원'(식당 당번)들을 뽑습니다. 선발된 후방책임자는 우선 돈을 다른 사람보다 더 내야 하고 '작식 대원'들과 함께 나가 있는 전 기간의 매끼 메뉴를 빈틈없이 짜야 합니다.

후방사업을 맡은 사람들은 은근히 서로 경쟁합니다. 누가 더 잘 먹이냐로 말입니다. 깨, 콩기름, 소금, 맛내기, 술, 맥주, 간장, 된장, 쌀, 국수 등에 식기를 가실 세제까지 꼼꼼히 챙깁니다.

그리고 날마다 오늘은 닭, 내일은 염소, 다음날은 잉어회, 그 다음날은 단고기, 오리불고기 이렇게 큼직큼직한 메뉴를 쭉 타산한 다음 비용을 계산합니다.

농장에 나가면 분조 장, 작업반장들과 사업하여 공수(일 정량)를 아예 통째로 받기도 합니다. 농사에 필요한 디젤유나 비료를 푼푼히 주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남들이 바삐 일하는데 건들건들하면 주는 영향도 나쁘다는 거죠.

어떤 이들은 현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공수가 해결되면 이제는 즐겁게 노는 일, 먹는 일만 남습니다.

반주는 물론 조, 중, 석으로 하구요, 식사가 끝나면 사람들을 피해 야산으로 오릅니다. 뽕나무밭이 최고입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하루 종일 주패(카드)를 치죠. 사사끼(카드놀이의 일종), 사기주(카드놀이의 일종) 등.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쪼그리고 앉아 하루 종일 해야 하니까요. 보통 담배를 대고 놉니다. 그리고는 저녁에 거나하게 소주와 맥주로 끼니를 때운 다음 노래경연이 있습니다. 저저마다 장끼를 자랑하는 거죠.

외교부 사람들은 하도 농장 개를 많이 잡아 '개교부'라는 별명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농장원들의 식탁과 일반인들의 모내기는 과연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