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이야기' 시간입니다. 미국북한인권위원회 김광진 객원연구원이 전해드립니다.
김장철로 막 접어드는 요즘 남한에서는 배추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여름철에 반복된 고온과 폭우로 수확이 줄다 보니 한 포기에 4달러 정도 하던 배추 값이 갑자기 15달러대로 폭등하여 생긴 현상입니다.
사태의 심각성은 언론에 등장한 '거창한' 표현들을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는데요,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배추 값,' '금배추,' '파동,' '대란' 등이 대표적입니다. 한국 언론은 물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유수의 외국 언론들까지 합세해 놀라울 정도로 이번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사들이 과거 전쟁과 가난, 반정부 시위 중심의 보도에 반해 우리의 특별한 김치사랑을 다룸으로서 김치가 건강식품이고 한국인의 놀라운 정치적, 경제적 성공이 김치와 관련이 있다는 인상을 부각시켜 한국과 한국음식에 대한 홍보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다네요.
위기에 대한 언론의 기사가 한편으로는 엄청난 홍보효과도 낼 수 있다는 시장경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일이 이쯤 되면 자유 민주주의나라인 남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우선 정부와 정치권의발 빠른 대처가 눈에 띕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청와대식탁에 배추김치대신 양배추김치를 올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과 대통령의 식탁에는 요즘 매일 값싼 양배추 김치가 오른다고 합니다. 과거 전방에서나 있을 번한 일이 국가 원수에게 배식되는 풍경이 펼쳐진 것이죠.
또한 정부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협의회를 갖고 중간 유통 상인들의 배추 매점 매석 행위를 집중 단속할 것과 절인 배추 수입량을 늘이고 조기 출하량을 확대하는 등 긴급하게 배추값 폭등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이렇듯 며칠 간 전 국가적, 사회적 문제로까지 치닫던 '금배추' 상황은 점차 진정되는 분위기입니다. 일각에서는 김장철 막바지인11월 말부터는 갑자기 늘어난 공급으로 배추 값이 급락해 농민들이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구매력 기준으로 3만 달러에 달하고 자가용차가 전체 가구 수를 추월한 1천 700만대를 기록하고 있는 남한이 '그깟 배추파동'을 가지고 온 나라가 법석대며 바로잡는데 과연 '이민위천의 정치,'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의 정치가 '활짝 꽃피는' 북한에서는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북한은 '치마배추'와 '중앙당 김치'라는 매우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치마배추'란 1994년 김일성사후 3년간에 걸치는 '애도기간'에 '친애하는 지도자'의 직무유기와 경제방치로 생겨난 북한의 신조어입니다. '중앙당 김치'는 온 겨울 중앙당 가족들에게만 주마다 특별히 공급되는 김치를 뜻합니다.
북한에서 김장은 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식량이 부족하고 반찬과 먹을거리가 많지 않은 긴 겨울 온 식구가 전적으로 의존해야하기 때문에 '반년식량'으로 불릴 정도로 소중합니다. 집집마다 한때는 적어서 수백kg, 많게는 1톤, 그 이상으로 배추와 무를 확보해 김치와 남새로 저장하고 소비해 왔죠. 더 좋은 배추, 더 실한 무, 더 많은 량은 그 집 세대주의 자존심이고 자랑이었습니다.
김장철이 오면 해마다 배추동원에 나가 고된 노동의 결과로 차례지던 자랑스러운 배추, 그런 배추가 어느 날 갑자기 영양실조에 걸렸는지 '치마배추'로 변했습니다. '고갱이'(속)가 하나도 없고 시퍼런 잎사귀만 치마처럼 넓게 퍼진 배추포기들을 획획 던지면서 '치마배추요, 치마배추 왔습니다' 하고 소리치던 일이 눈앞에 선 합니다. 그것도 얼마나 귀했던지, 없어서 못 먹는 시절이었죠.
지금은 살림살이가 좀 낳아지셨습니까. 백성들은 어떻게 살든 여전히 김정은 대장, 리영호 차수, 최룡해 대장 등 군 장성들과 중앙당 간부들, 국가보위부, 인민보안부, 인민위원회, 관리위원장, 당 비서들은 실한 배추로 김장을 담글 겁니다. 그리고 김치 속에는 남들은 '보고 죽재도 없는' 문어, 소고기, 낙지, 동태를 듬뿍 넣겠죠. 중앙당에서는 김치를 공장에서 만들어 특별히 공급합니다. 일명 '중앙당 김치'라고 부르죠. 점심 반찬으로 친구들이 유리 커피 통에 싸 온 것이 얼마나 맛있던지.
사랑하는 북한형제 여러분. 우리는 한 핏줄을 잇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이름을 쓰고, 한 하늘을 이고 사는 형제이지만 너무도 판이한 세상에서 판이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배추 값이 오르면 대통령부터 온 국민이 나서 그것을 해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백만이 굶어 죽고 비참하게 사는데 김 씨 왕족은 실패한 권력을 3대째 세습하고.
북한 형제들 모두가 하루 빨리 '치마배추'가 아니라 '중앙당 김치'를 먹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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