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병 확산…바나나 멸종위기 ?

2014년 4월 서울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로 선보인 아프리카산 바나나는 밤과 낮의 기온차가 큰 사막 기후에서 자라 식감이 좋고 당도가 높으며 기존 동남아산보다 20~30% 저렴하다.
2014년 4월 서울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로 선보인 아프리카산 바나나는 밤과 낮의 기온차가 큰 사막 기후에서 자라 식감이 좋고 당도가 높으며 기존 동남아산보다 20~30% 저렴하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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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세계 각국은 18세기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경제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열심히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그 결과, 물질의 풍요와 생활의 편리성은 어느 정도 이루어 놓았지만, 지구 환경은 지금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환경문제는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그 심각성은 큽니다. 장명화가 진행하는 주간 프로그램 '이제는 환경이다'는 세계 각국의 최신 환경 문제를 짚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지구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바나나를 들여다봅니다.

(주찬양) 북한에 있을 때, 장마당에서 바나나를 파는 곳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나나 같은 남반 과일들은 비싸서 사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 들어갔다 나오는 친구나 이런 집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북한의 시세보다 바나나를 아주 싸게 사옵니다. 이걸 먹어봤던 적이 있습니다. 저희 집도 다 먹어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바나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장에 있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바나나를 즐겨 먹었어요.

올해로 한국 생활 5년차가 된 대학생 주찬양 (가명) 씨가 고향인 함경북도에서 살 때 바나나를 먹어 본 경험을 11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아무나 장마당에서 쉽게 사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찬양 씨보다 10년 이상 먼저 한국에 정착한 김춘애 씨 역시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 주민들이 요즘 기념일 상차림에 바나나를 놓는 집이 적지 않다고 최근 전했습니다.

(김춘애) 언젠가 북한에 남아있는 형부의 환갑 사진을 받은 적 있습니다. 그 환갑상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먹음직스러운 잘 익고 큼직한 바나나였거든요. 이렇게 북한 주민들도 결혼식 상이나 환갑상에 남방과일을 올려놓는다고 합니다.

남한도 1980년대만 해도 바나나는 '비싼 과일'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바나나를 먹는 집은 부잣집이었지. 어머니께 바나나가 먹고 싶다며 떼를 쓰기도 했어. 하지만 비싸서 먹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하는 40대, 50대가 적지 않습니다.

이렇던 바나나는 남한에서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과일 부문 매출 1위를 기록했습니다. 감귤과 수박, 딸기와 사과가 2~4위를 오르내리는 가운데 바나나는 전체 과일 비중의 10~11%를 차지하면서 1순위를 고수할 정도로 값싸고 흔한 과일이 됐습니다.

하지만, 북한 장마당이나 남한 시장에서 흔히 보는 바나나를 어쩌면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게 생겼습니다. 바나나가 멸종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즈는 최근 파나마병의 변종이 아시아에 이어 호주에서도 확산해 바나나 수출 사업이 타격을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세계적인 농경제학자인 토니 패티슨 박사가 파이낸셜타임즈에 한 말입니다.

(토니 패티슨) 파나마병은 토양 곰팡이에 의해서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바나나 식물의 뿌리를 먼저 감염시키고 이후 식물체 전체로 확산해 결국 식물이 고사하게 되는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일단 파나마병을 발견하게 되면, 4년 안에 바나나 농장은 완전히 손상됩니다.

실제로 파나마병은 지난 20년 동안 동남아시아 바나나 농장을 휩쓸었습니다. 필리핀 전 농장주인 델핀 델라 크루즈 씨가 2년 전 현지 방송에 전한 말입니다.

(델핀 델라 크루즈) 바나나 병이 돌면서 소득은 줄고, 일꾼들 월급 주기도 힘들어서 바나나 농장을 그만뒀습니다.

진하고 달콤한 맛의 '그로미셸' 품종 바나나는 바로 이 파나마병 때문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1960년대 중반, 파나마병에 잘 견디는 '캐번디시' 품종이 극적으로 발견됐습니다. 그로미셸보다 크기가 작고 맛과 향도 떨어졌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캐번디시를 병들게 하는 신종 파나마병, 즉 TAR4 곰팡이가 등장한 겁니다. TAR4 곰팡이는 1990년 대만에서 처음 발견됐습니다. 당시 대만에서 재배되던 바나나 70%는 이 곰팡이에 감염돼 잎이 갈색으로 변하며 말라 죽었습니다.

이 곰팡이는 독성이 매우 강해 뿌리를 시들게 하는 것은 물론, 신발의 흙으로도 운반돼 지금까지 축구경기장 2,000개 이상의 바나나 농장을 오염시키기도 했습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호주 북부 지방 등으로 빠르게 퍼져나간 TAR4는 지난 3년간 중동, 아프리카, 호주에도 감염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호주의 정부 산하기관인 '퀸즐랜드 생물보안'에서 TAR4 사업국장으로 일하는 레베카 사푸포 씨가 파이낸셜타임즈에 밝힌 말입니다.

(레베카 사푸포) 파나마병은 호주의 바나나 산업계뿐만 아니라 식물 생태계에도 심각한 위협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파나마병은 둥지를 튼 지역에 이미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에 따라, 유엔은 파나마병을 퇴치하기 위해 5000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예방책은 없는 상태입니다. 유엔 식량 농업전문가인 파질 두순셀리 씨는 "TAR4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바나나 수출품종인 캐번디시 품종에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바나나 생산에 주요 위험"이라고 우려합니다.

문제는 캐번디시는 씨앗이 없어 뿌리줄기를 잘라 번식시켜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전 세계 모든 바나나가 유전적으로 한 개체인 셈이 돼 치명적인 질병 하나로 일시에 멸종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캐번디시를 대체할 품종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유엔은 바나나 세계 수출 4분의 3가량을 차지하는 남미 지역에 TAR4가 퍼지지 않도록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남미 지역으로 TAR4가 퍼지면 세계 바나나 사업에 큰 타격을 줄 뿐더러 '캐번디시' 종이 멸종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의 랜디 플로츠 교수의 말입니다.

(랜디 플로츠) 바나나 전염병이 동남아시아를 넘어 인도나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으로 번질 경우 문제가 훨씬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8대 농작물인 바나나는 전 세계 인구 4억 명의 식량입니다. 예컨대 우간다를 비롯한 아프리카에는 전적으로 바나나를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엔 세계식량기구는 파나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공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여러 국가의 관계 당국은 조기경보체재를 마련하고 농장주들을 위한 관련 교육 사업을 개발했습니다. 일례로, 호주 퀸즐랜드 툴리 지역의 농장주들은 동물을 비롯한 사람, 기계 등의 이동을 제한하기 위해 울타리를 세웠습니다. 또 세차시설을 마련해 차량에 방역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바나나 균은 사람이나 기계, 동물 등에 흙이 묻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적절한 보상이 마련되지 않으면 농장주들이 전염병 신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호주 퀸즐랜드 대학의 안드레 드렌스 교수는 "적절한 보상 체재가 없으면 농장주들이 나서서 질병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며 정보의 부족이나 적절한 검역 조치가 시행되지 않았던 아시아 경우 대다수 농장주가 실제 TAR4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남한의 추석 상에, 북한의 환갑상에 오르내리는 바나나. 단순한 과일이 아닌 인류의 좋은 먹을거리이자 식량인 바나나를 멸종시키는 파나마병의 백신이 발견되거나, 새로운 품종이 나오길 전 세계는 간절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환경이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