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세계 각국은 18세기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경제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열심히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그 결과, 물질의 풍요와 생활의 편리성은 어느 정도 이루어 놓았지만, 지구 환경은 지금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환경문제는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그 심각성은 큽니다. 장명화가 진행하는 주간 프로그램 '이제는 환경이다'는 세계 각국의 최신 환경 문제를 짚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북한이 요즘 주장하는 ‘100년래의 가뭄’을 들여다봅니다.
(북한 주민) 올해 심한 가뭄 피해로 인해 예년에 없이 논 벼농사에 많은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황해남도의 한 북한 주민이 최근 조선중앙TV에 북한의 극심한 가뭄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주민의 뒤에는 모내기를 한 논이 보이는데, 바짝 메말랐습니다.
대외홍보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도 "조선의 각지 농촌들에서 100년래의 왕가물로 심한 피해를 받고 있다"며 상황의 심각성을 부각시켰습니다. 통신은 “44만1560여 정보의 모내기를 한 논에서 13만 6200여 정보의 볏모들이 말라가고 있다"며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에서는 모내기를 한 면적의 80%, 황해북도에서는 58%의 논이 마른 상태에 놓여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잇달아 관영 매체를 통해 외부에 이 같은 사실을 전하자 주요외신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 교도통신은 "북한은 가뭄으로 지속적인 식량난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영국 BBC방송도 "북한이 내부의 결핍 상황을 알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가뭄 피해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전했습니다. AP통신도 북한 기상 관계자를 인용해 "극심한 가뭄으로 농사에 타격을 입고 있고,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가뭄이 북한 당국의 주장처럼 100년 만에 최악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시아지역 농업전문가인 렌달 아이어슨 박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통화에서 한 말, 들어보시죠.
(렌달 아이어슨) 제가 우려하는 점은 북한 내 모든 상황이 나쁠 것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조금 이르다는 것입니다. 올해 기후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강우량이 평소보다 적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유사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아이어슨 박사는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에서 협동농장 단위의 농업협력사업을 진행한 민간구호단체 ‘미국친우봉사회'에서 농업개발협력 자문관으로 활동해, 북한의 현실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하는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이어슨 박사는 먼저 북한의 가뭄이 아직 재앙적 수준이 아니라고 보는 근거로 올해 북한의 강우량을 제시했습니다.
(렌달 아이어슨) 예를 들어, 영국의 세계날씨사이트를 보면 황해북도와 황해남도에 봄철에,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이달 중순경에도 비가 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시작입니다. 하지만 조선중앙통신의 최근 보도처럼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부정확합니다.
이와 관련해, 아이어슨 박사는 최근 미국 내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지난 3월 이후 해주와 사리원에서 100mm가 넘는 비가 왔고 최근에도 50mm 안팎의 비가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또 평양의 경우에도 지난 3월 이후 143mm의 비가, 그리고 지난주는 27mm의 비가 왔다고 소개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평균치보다는 낮지만 전혀 오지 않았다는 북한의 주장은 과장됐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반도는 계절에 따라 강수량의 차이가 큽니다. 연간 강수량의 70%가 6∼9월에 집중되고 특히 7월 강수량이 전체의 28%를 차지합니다. 여름철의 비는 대개 한꺼번에 내리는 집중 호우 형태입니다.
물론 장마는 여름철 가장 중요한 기상 현상이지만 장마를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삼복더위로 넘어가는 해도 있습니다. 또 장마전선이 형성돼 있긴 하지만 제대로 비가 내리지 않는 '마른장마'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장마가 끝나고 1주일 이상 지난 후에 다시 장마전선이 남쪽으로 되돌아오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아이어슨 박사는 "최근 며칠 동안 내린 비가 장마의 시작이라면 모든 게 정상화될 것"이라며 "북한은 지난해도 가뭄 위기를 경고했지만 나중에 비가 와 회복됐고 옥수수 생산량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말했습니다.
(렌달 아이어슨)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가물었다가도 6월말이 되면 비가 왔습니다. 비가 충분히 와서 연말까지 양호해 농업생산량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러시아의 국영방송인 ‘러시아의 소리’는 지난해 12월 하순 북한 내각 수매양정성의 김지석 부상이 “2014년 가뭄 피해에도 불구하고 수확량이 571만 톤으로, 2013년과 비교해 5만 톤 증가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앞서,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북한 정부를 인용해 올해 초 북한이 지난해 쌀 226만 톤과 옥수수 235만 톤 등 모두 461만 톤을 생산했다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연간 최소 곡물 수요량은 540만 톤으로 김지석 부상이 언급한 571만 톤이 사실이라면 31만 톤이 남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가뭄 피해를 호소하는 게 국제사회의 지원을 노린 행동이라고 분석합니다.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안나 파이필드 도쿄지국장은 최근 외교전문 웹사이트 ‘월드뷰’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은 작년에도 1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을 주장했으나 결국 농사에 큰 영향이 없었고, 2001년에는 10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라고 말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유엔 세계식량계획은 북한의 가뭄 상황이 악화되면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한국 정부도 북한이 심각한 가뭄 피해를 막기 위한 지원을 남측에 요청할 경우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국 정부도 북한에 지원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현재로서는 북한의 극심한 가뭄에 대한 대북 지원 계획은 없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해, 렌달 아이어슨 박사는 최근 들어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라면서, 현재 국제사회에는 북한의 식량난보다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렌달 아이어슨) 지난 몇 년간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명백히 줄어들었습니다. 당장 유엔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난민과 실향민 등을 포함한 세계 강제이주민의 수가 6천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고통 받는 난민 문제는 거의 틀림없이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부족 문제보다 최우선순위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제는 환경이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