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세계 각국은 18세기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경제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열심히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그 결과, 물질의 풍요와 생활의 편리성은 어느 정도 이루어 놓았지만, 지구 환경은 지금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환경문제는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그 심각성은 큽니다. 장명화가 진행하는 주간 프로그램 '이제는 환경이다'는 세계 각국의 최신 환경 문제를 짚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환경전문 민간 연구소인 '시민환경연구소'의 백명수 부소장과 함께 한반도 자생생물 발굴, 분류 작업을 들여다봅니다.
방울혹탱자나무지의, 쏠치우럭, 긴다리자게, 산쉽싸리, 들괭이밥, 큰남방제비나방. 혹시 아시나요? 지난해에 한반도 자생생물 목록에 새로 올라간 1,700여개의 생물 가운데 일부입니다. 지난 1996년 2만 8400여종이던 자생생물 목록은 20년만에 두 배 가까운 4만 7천종을 넘어섰습니다.
이처럼 남북한은 자국 내 자생 생물자원 분류 작업에 주력하고 있는데요, 백명수 부소장은 자국의 생물주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평가합니다.
(백명수) 과거엔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생물을 활용하는 데 제약이 없었습니다. 반면, 한국에 있는 자원을 다른 나라가 사용하는 데 한국이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이 체결되면서 각 나라의 영토 안에 있는 생물에 대한 국가의 권리, 즉 생물 주권이 인정되기 시작됐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각 국가들은 자국의 생물 주권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해지기 시작했는데요, 생물 주권을 지키려면 무엇보다 자국에 어떤 생물이 있는지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보다 많은 생물 자원이 최신의 국가생물종 목록 작성이 매우 중요한데요, 이는 생물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증거이자, 한반도 생물다양성 보존에 대한 역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각 국이 자국의 생물 주권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나고야 의정서’의 발효 때문이라고 백 부소장은 지적합니다.
(백명수) 한국에서 나고야 의정서가 올해 8월 17일 98번째로 당사국이 되었습니다.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 자원을 활용해서 생기는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지침을 담은 국제협약입니다. 2010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 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됐습니다. 이 총회에서 생물자원을 활용해서 생기는 이익을 어떻게, 누구와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즉, 생물자원을 이용한 국가는 그 자원을 제공하는 국가에 사전에 알려주고, 승인을 받아야 하며, 유전자원을 이용해서 생기는 금전적, 비금전적 이익을 상호 협의된 계약에 따라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쉽게 말해, 나고야 의정서는 국가별 특유의 생물자원에 일종의 '재산권'이 생겨나는 개념인데요, 식물, 동물, 곤충, 천연물, 바이러스, 미생물 등도 나고야 의정서의 이익 공유 대상에 포함됩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생물자원 절반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데요,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해 한국 내136개 제약회사와 화장품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 따르면 수입국으로는 중국이 51%로 가장 높았고 유럽, 미국 순이었습니다.
중국은 한국보다 앞선 지난해 9월 나고야 의정서 당사국 지위를 얻었습니다. 최근엔 자국 생물자원을 해외 기업이 이용할 시, 중국기업 합작 전제, 중국 연구원 참여, 이익공유금 별도 연간 이익발생금 0.5∼10% 추가 납부, 이를 위반할 시 벌금 등의 내용을 담은 조례를 예고했습니다.
한국은 국가적으로 이를 대비하기 위해 한국 내 생물자원을 발굴하고 자원 이용을 위한 생물국가목록을 작성해왔는데요, 국립생물자원관은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을 발표하고 미래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최근 '한반도 자생생물 연구의 현황과 미래전략'이란 제목으로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백 부소장의 설명입니다.
(백명수) 생물자원관 개관 이후 지난 11년간 한국 자생생물 조사와 발굴사업에 대한 평가보고회입니다. 그 동안 체계적인 생물종 목록 작성에 대한 중간 보고회 성격입니다. 향후 계획을 어떻게 진행해 나가겠다는 공유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국내 미개척분야, 특히 무척추동물이나 곤충, 식물, 조류, 원핵생물 등과 같은 분류군에서 그간의 발굴 성과와 향후 계획이 논의됐는데요, 특히 2006년부터 진행된 자생생물 조사발굴을 통해 한국의 미개척 생물 분류군에서 신종과 미기록종 5,144종을 국가생물종 목록에 추가한 성과를 보고했습니다. 그 밖에도 한국은 지금까지 미개척 생물분야에 분류학자가 없거나 극히 적어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외국 연구자들과 공동 연구를 통해서 지식을 공유해왔습니다. 정부는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진행을 위해서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접합균류, 조류, 태형동물류, 편형동물류 등 국내 미개척 분야에 대해 전문인력 약 30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자생생물 발견에 더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한 것입니다.
북한은 아직 나고야 의정서 당사국은 아니지만, 자국의 생물주권을 확보하고 보유한 유전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백 부소장의 말입니다.
(백명수) 북한도 자체적으로 일부 조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은 1998년 ‘생물다양성 국가전략 및 시행계획’을 수립했습니다. 2000년부터는 생물종 다양성 정보화가 활발히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물다양성과 관련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특히 2000년대 중반 조선 속씨식물 다양성 열람 및 해석 프로그램인 ‘목란 1.0’이 개발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밖에 북한은 생물자원과 관련된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1972년부터 1979년 사이에 총 7권으로 된 ‘조선식물지’를 출판했고, 1996년부터 2000년 사이에 10권으로된 ‘조선식물지’ 2판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부터 2004년 사이에는 북한 식물사전인 각 도의 경제식물에 관한 자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최근 2015년에는 ‘조선의 특산식물’이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에 사는 생물의 실체를 파악하고 미래 잠재 가치를 지닌 생물자원을 발굴하려는 노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요, 당장 남북한의 공동 생물자원 조사와 발굴 작업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이지 않다며 백 부소장은 안타까워했습니다.
(백명수) 한반도 생물다양성 보존과 발굴을 위해서는 남북협력사업이 모색되어야 하는데요, 한국은 2007년 국립생물자원관 개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생태계 구축을 천명한 바 있습니다. 이는 남북이 함께 협력해서 한반도의 골격이 되는 생태축을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백두대간을 복원하고 비무장지대를 평화 생태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당시의 목표로 한반도의 생물종 약 10만종을 예측했는데요, 2020년까지 모두 밝혀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목표달성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조사가 남북간의 협력으로 진행돼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 남북한에 공동 생물자원 발굴조사 계획이 단계적으로 수립돼야 합니다. 연차적으로 준비기를 통해서 서로 상이한 용어를 먼저 통일하고,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서 미개척분야 생물종을 분류하고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공유하는 플랫폼 운영이 필요합니다. 또한 전문적인 인력양성을 통해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인력풀 자원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 생태계 구축 연설로 당시 남북한의 비무장지대 유네스코 접경 생물권 보전구역 지정, 설악산과 금강산의 연계 보호, 훼손된 북한 쪽 백두대간 복원 등 다양한 환경 협력 방안이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환경이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