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세계 각국은 18세기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경제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열심히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그 결과, 물질의 풍요와 생활의 편리성은 어느 정도 이루어 놓았지만, 지구 환경은 지금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환경문제는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그 심각성은 큽니다. 장명화가 진행하는 주간 프로그램 '이제는 환경이다'는 세계 각국의 최신 환경 문제를 짚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환경전문 민간 연구소인 '시민환경연구소'의 안병옥 소장과 함께 경기도의 비무장지대 생태보전 노력을 들여다봅니다.
(전쟁 효과음)
전쟁의 비극을 오롯이 안은 채 60여년을 보낸 DMZ 비무장지대. 오랜 기간 인적이 끊긴 이 비무장지대의 생태보전에 한국의 경기도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최근 세계적 환경전문기구인 ESP 본부와 함께 비무장지대 일원 생태계 보전과 지역발전을 위해 힘쓰는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ESP는 지난 2008년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얻는 많은 혜택을 뜻하는 '생태계서비스' 개념 확산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국제 환경 분야 전문기구입니다. 현재 90여 개국에 2,2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습니다. 안병옥 소장은 이번 협약서의 핵심 내용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안병옥) 이번 업무협약 내용을 보면, DMZ Global Trust 운동 전개가 포함됐습니다. 이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서 보존가치가 큰 자연유산이나 문화유산을 매입해 보존하는 환경운동입니다. National trust라고도 하는데 이를 DMZ에 적용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DMZ 일원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처럼 국제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National Trust란 한국말로 '자연신탁 국민운동'이라고도 하는데요, 한국의 자연신탁 국민운동은 시민 자연유산 제1호인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와 문화유산 제1호 최순우 고택 등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은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며 문화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유엔 산하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지역입니다. 현재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백두산, 구월산, 묘향산을 포함해 남한의 설악산, 제주도, 신안 다도해, 광릉숲, 전라북도 고창군 등 8곳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번 업무협약에 따라, 경기도와 ESP는 파주 임진각에 문을 연 DMZ 생태관광지원센터에 ESP 아시아사무소를 설치하고 과학적 방법에 기반을 둔 비무장지대 일대의 생태계보전 정책 발굴과 국제기구를 활용한 국제사업을 함께 추진할 방침입니다. 안 소장은 이번 ESP 아시아사무소의 파주 설치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안병옥) DMZ 생태관광지원센터가 얼마 전에 파주에서 개관됐습니다. 이 센터 내에 ESP 아시아사무소가 설치됐습니다. 아무래도 DMZ는 교란되지 않는 조건에서 생태계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기에다 DMZ가 가진 평화의 상징성, 남과 북이 가진 역사적인 측면에서의 상징성 등이 있기 때문에 ESP가 파주에 아시아사무소를 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DMZ' 혹은 '비무장지대' 하면 고압 전기철조망과 지뢰를 비롯한 장애물 등을 쉽게 떠올리는 청취자들을 위해 비무장지대의 생태적 가치를 간단히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안 소장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은 희귀한 자연유산'이라고 정리합니다.
(안병옥) 뭐 거의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60여 년간 민간인들의 출입이 금지됐기 때문에 자연생태계가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쪽에서는 사라졌다고 알려진 다양한 어류나 파충류 등 귀중한 생물 종들이 지금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태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DMZ는 가장 연구가치가 있는, 생태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2008∼2013년 비무장지대 일원 생태계 조사 결과, 한국 내 멸종 위기종의 43%인 106종이 비무장지대에서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포함해 총 5,097종, 한반도 생물종의 약 13%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짧은 조사기간과 지뢰지대라는 한계를 감안하면 더 풍부한 종이 서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배병호 생물다양성 한국협회 사무총장이 지난해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힌 말입니다.
(배병호) DMZ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따지면 140조 원 정도 되고요. 그리고 한국 생태의 50% 가까이가 이곳에 밀집돼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학자들이 DMZ를 중요 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DMZ는 특히 인간이 출입하지 않았을 때 생태계가 어떻게 복원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입니다.
때문에, ESP의 루돌프 드 흐룻 의장은 “국제기구인 UNCCD, 유엔사막화방지협약과 함께 토지를 활용해 지역민과 함께 혜택을 나누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공동체 또는 러닝 빌리지 시범사업을 DMZ 일원에서 추진하려 한다”며 “자연생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주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러닝 빌리지 사업에 관한 안 소장의 설명입니다.
(안병옥) 러닝 빌리지는 그대로 번역하면 '학습하는 마을', '배우는 마을'입니다. 무엇을 학습하는 지가 중요한데요, 자연이 주는 생태계서비스를 체감하면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겁니다. 한마디로 DMZ는 미지의 자연이죠. 그동안 개발하지 않고 보존됐기 때문에 DMZ 속에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지식들이 있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식들이 있는데. 이를 축적하는 지식창고의 역할을 DMZ가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개발하는 것보다는, 자연을 보호하면서 오히려 경제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나가는 과정으로서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와 ESP 간 DMZ 업무협약을 계기로 조만간 남북 환경협력사업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겠냐는 질문에 안 소장은 조금 어렵지 않겠냐고 내다봤습니다.
(안병옥) 글쎄요, 최근에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기 때문에 당분간 남북환경사업 추진은 어렵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DMZ와 관련해서도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방안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남북한이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안 소장이 재차 '그린 데탕트'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그린 데탕트는 환경의 ‘그린’ 즉 녹색과 긴장 완화의 ‘데탕트’를 합쳐 만든 말입니다.
(안병옥) '그린 데탕트'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환경을 보존하는 과정을 통해서 화해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린 데탕트와 같은 미래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DMZ 보전과 같은 비정치적인 공동사업을 남북이 해나가면서 상호신뢰를 회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장 북한이 DMZ 관련 논의에 참여할 가능성을 희박하다고 생각하지만, 공동학술연구 등을 통해서 조금씩 신뢰를 회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환경이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