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와 ‘탈북민’ 의 호칭

영국에 정착한 재영조선인협회 탈북민 회원들.
영국에 정착한 재영조선인협회 탈북민 회원들. (RFA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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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은 북한정권의 독재에 저항하여 목숨을 걸고 탈북을 감행한 북한민주화의 첫 기수들입니다. 어떤 형태의 탈북을 시도 했건 탈북민들의 정체성은 '독재저항' 입니다. 시위, 결사, 언론, 표현의 자유 등의 민주주의가 보장이 되어 있지 않은 북한사회에서 북한주민들은 '탈북'을 통해 수령독재에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탈북민들의 탈북의 정체성과 부합되지 않은 호칭문제로 인해 그 동안 탈북민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대두되어 왔습니다. 흔히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을 '탈북자'라고 부르는데요, 정작 당사자들은 '탈북자'라는 호칭을 별로 선호하지 않고 있습니다.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살다 2013년에 영국에 정착한 가명의 이철호씨는 '탈북자'라는 호칭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우리는 도망자가 아니다 라며 탈북자라는 표현에는 도망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철호: '자' 가 들어가는 것은 조금 나쁜 말로 들리더구만요, 탈북민 이렇게 하면 더 존경해 주는 것 같은, 그렇게 받아 들어질 것 같은데요, 그런데 탈북자 하고 '자'를 넣으면 이상해요.

북한에서 재봉사로 있다 2007년에 영국에 정착한 김순녀씨는 '탈북자'라는 용어는 왠지 거부감과 함께 인격모욕적으로 들린다며, '탈북자' 호칭에 대해 좀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김순녀: '탈북자'라고 하면 딱 표시가 나니까 거부감이 당연히 들죠. 조금 어떻다고할까 차별 받는다는 느낌도 들고… 이방인 같고… 다른 용어로 바뀌면 좋긴 하죠. 그런데 바뀔만한 이름이 있었나요? 그래서 나온 게 '새터민'이였잖아요.

북한을 탈출한 북한주민에 대한 호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국가는 한국입니다. 한국정부는 법적으로 1978년 12월 16일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 에서 '귀순용사'호칭을 사용하다가 1993년 6월 11일 개정된 "귀순북한동포보호법"에서 '귀순북한동포'로 정정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을 탈출하는 주민들 늘어나면서 1997년 1월에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한국정부는 기존의 '귀순' 개념이 '북한이탈'로 바뀌었으며 북한을 떠난 후 아직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을 '북한이탈주민'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정부가 공식 채택한 법률 용어일 뿐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법적 용어 외에 별칭으로 '탈북자'라는 호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탈북자'라는 용어는 누가, 언제, 왜 사용하게 되였는지 출처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역사로 본다면 1999년 1월 전 북한 로동당 국제비서였던 황장엽씨와 전 북한로동당 간부 였던 김덕홍씨가 주도하여 세운 '탈북자 동지회'라는 단체명에서 '탈북자'라는 호칭이 공식화 되었습니다.

그러다 2005년 대한민국 통일부는 탈북자라는 용어가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취지에서 새로운 명칭인 '새터민'이라는 애칭을 마련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탈북자 단체들이 '새터민'이라는 용어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계속 보이는 등 용어개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2008년 11월 통일부는 가급적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다시 발표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아직까지 북한을 탈출한 주민에 대한 정확한 용어가 마련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 전 독일은 동독을 탈출한 주민을 '이주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주민(Übersiedler)은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 온 모든 이주자를 의미하며, 서독정부가 동독으로부터 대가를 지불하고 데려온 정치범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인 논쟁을 끝내고자 영국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국제 탈북민 연대'는 기고문을 통해 어떤 형태이든 수령독재에 저항해 탈출한 북한주민이라면 '탈북자'가 아닌 '탈북민'으로 호칭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고문에서 '국민연'은 호칭에는 정체성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같은 독재국가라도 전세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북한 같은 특수독재국가 제도에서 탈출한 북한주민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 된다며 한 부류는 '육체는 탈출했으나 정신은 아직도 수령독재에 포로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 다른 한 부류는 '몸과 정신이 다 같이 탈출해 진정한 자유를 찾은 주민'들이라고 못박았습니다. 그러면서 육체만 탈북한 북한주민은 '탈북자', 몸과 정신이 모두 탈북한 주민은 '탈북자유민'즉 '탈북민'이라고 규정한다며 국제사회는 '탈북자' North korean defector가 아닌 '탈북민' North Korean refugee로 호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제탈북민 연대는 이어 '탈북민'에 대한 호칭에는 탈북의 정체 성 외에도 '탈북자유민, 탈북주민, 북한난민, 북한이탈주민, 새터민'등의 용어도 함축이 되어있어 보편성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런던에서 RFA자유아시아 방송 김동국 입니다.